“(일본의) 아사다 마오는 못 받았는데 김연아의 스파이럴(한쪽 다리를 들고서 빙판을 선회하는 기술)이 가산점을 받는 건 에지(스케이트 날)의 인아웃(안쪽
과 바깥쪽)이 빠르고 안정적이기 때문이야. 일정시간 동안 스파이럴 포지션(다리를 올리는 포즈)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해.”(A 군)
“스파이럴이 뭐야? 에지는 또 뭐고?” (C 군)
10월 서울 은평구에 있는 한 고등학교 2학년 ○반.
세계 신기록을 달성한 피겨스케이팅의 여왕 김연아의 연기와 점프에 대한 평가가 한창인 가운데 최모 군(17)은 어리둥절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평소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최 군은 김연아의 경기가 있거나 박지성처럼 해외에서 뛰는 축구선수들이 맹활약한 다음 날이면 ‘꿀 먹은 벙어리’ 신세였다. 심지어 해외 축구스타의 이름을 모른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체육시간 축구경기에 끼워주지 않은 일도 있었다.
소외감을 느낀 최 군은 최근 거금 8만 원을 투자해 친구가 추천한 스포츠잡지 1년 치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최 군은 “잡지도 읽고 매일 인터넷이나 스포츠 뉴스를 보며 스포츠계의 이슈를 파악한다”면서 “좋아하는 선수의 브로마이드가 잡지 부록으로 나오면 서로 달라며 빵과 음료수를 ‘상납’하는 친구도 생겨 내 위치가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스포츠에 관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가진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케이블·위성 TV와 인터넷 등 스포츠 관련 정보를 얻을 루트가 많아지고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한국 스포츠 스타들이 증가한 데 따른 현상이다.
이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각종 스포츠 팀에 관한 정보를 꿰뚫고 있다. 해외 명문 축구팀의 팬인 경우 영문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그 축구팀의 최근 전적과 선수별 컨디션, 특정 선수가 날린 슛의 수와 패스 성공률을 조사한다. 그리곤 쉬는 시간마다 이 데이터를 토대로 친구들과 함께 ‘호나우지뉴(브라질 출신 축구 선수)가 전성기 실력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사항’이나 ‘박지성이 팀 내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보일 수 있는 포지션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응원하는 팀의 경기가 끝나면 포털사이트의 게시판에 경기분석과 승패 원인을 작성해 올린다.
일부 학생은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 스포츠 스타의 경기를 보기 위해 ‘폐인’ 생활에 빠진다.
고등학교 2학년 이모 군(17)은 ‘맨유(영국 프로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가 있을 때면 생중계를 보기 위해 위성TV가 설치된 친구 집을 찾는다. 이렇게 모이는 친구들은 10여 명. 이 군은 이때 이튿날 입을 교복을 챙긴다. 경기가 오전 1∼2시에 시작해 오전 3∼4시에 끝나기 때문에 친구 집에서 곧바로 등교하기 위해서다.
TV를 볼 땐 맨유의 붉은색 유니폼을 입는 것은 필수. 각자 응원하는 선수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는다. 이 군은 맨유의 공격수 ‘긱스’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이다. 이 군은 “긱스의 유니폼을 입고 생중계를 보면 경기를 직접 뛰고 있는 것처럼 흥분이 된다”며 “긱스가 골을 넣으면 내가 뭔가를 이룬 듯한 성취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스포츠는 여학생 사이에서도 이슈다. 스포츠에 대한 여학생들의 관심은 스포츠스타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된다. 휴대전화나 지갑에 스포츠스타의 사진을 보관해 다니기도 한다. 경기장으로 가 응원한 뒤엔 경기장 밖으로 나오는 선수들을 만나 직접 싸온 영양식을 선물하는 ‘무한 애정’을 표시하기도 한다.
경기 성남시 Y여고 박모 양(18)은 “아이돌 스타와 다르게 옆집 오빠 같은 친근한 외모가 스포츠스타의 매력”이라며 “근육질 몸매를 가진 선수는 물론 잘생긴 선수들도 많아 요즘엔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박 양은 재미삼아 동생을 따라 국내 프로축구팀‘성남 FC’의 축구경기를 보러갔다가 콜롬비아 출신 선수 ‘몰리나’에게 반했다. “중거리 슛을 쏠 때 그가 보여준 탄탄한 몸매가 눈에 박혔다”고 박 양은 말했다. 친구 3명을 ‘포섭’해 매달 두세 번 성남 FC 홈구장을 찾아가 응원하는 박 양은 “전광판에 내가 응원하는 모습이 나온 적이 있는데 경기의 주인공인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말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