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는 채무자의 부동산 등 강제로 판뒤 빚 돌려받는 것
‘불황형 매물’ 올해 급증… 조선소 대학교까지 “팔자”내놔
[A] 경매정보업체들의 집계에 따르면 올 한 해 전국 법원의 경매에 14조 원이 넘는 자금이 몰렸다고 합니다. 수백억 원씩이나 하는 조선소나 대학교, 멀티플렉스 극장까지 경매에 나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법원은 재판을 하는 곳인데 법원에서 집이나 조선소, 극장까지 파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경매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제가 여러분께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는 상황을 가정해 볼게요. 돈을 갚을 의무가 있는 저는 채무자, 여러분은 돈을 받을 권리가 있는 채권자입니다. 돈은 없지만 제가 아파트를 한 채 가지고 있을 때 여러분이 제가 가진 아파트를 강제로 판 뒤 그 돈으로 빚을 돌려받는 것이 경매입니다. 아파트를 팔아서 돈을 돌려주는 역할은 법원이 대신해 주지요.
앞서 아파트를 예로 들었지만 아파트 외에도 토지, 상가, 주상복합 등 부동산이나 자동차, 기계 등 동산(動産)도 경매 대상이 됩니다.
경매는 △경매 신청 △법원의 경매 개시 결정 △매각 준비 △입찰 △매각 △대금 납부 △소유권 이전 등기 △부동산의 인도 등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채권자는 법원에 경매 신청 서류와 수수료를 제출하고 경매 신청을 합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해당 물건을 압류하고 채무자 등의 이해관계인에게도 알린 뒤 경매가 진행됩니다. 법원은 해당 부동산의 현황을 파악합니다. 부동산의 가치를 판단하는 감정평가사들이 해당 물건의 가치를 매겨 최저 가격을 정합니다. 경매 날짜가 정해지면 법원은 게시판과 홈페이지 등에 경매가 열린다는 것을 공고합니다.
경매로 나온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신분증과 도장, 보증금(최저 가격의 10%)을 준비한 뒤 자신이 원하는 가격을 적은 입찰표와 함께 제출합니다. 법원에서는 입찰표를 걷어 해당 물건에 누가 가장 비싼 가격을 적어냈는지 보고 물건을 최종적으로 받아갈 사람, 즉 낙찰자를 결정합니다.
올해는 유례없이 각 법원의 경매 법정이 북적이는 한 해였습니다. 경매시장은 경기와 반비례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지난해 말 닥친 경제위기로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이 늘면서 법원에 경매 물건이 크게 늘고 경매시장은 오히려 활발해졌습니다. 올해 10월에는 경북 경산시의 한 대학교가 대구지방법원 경매에 나오는가 하면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모텔과 나이트클럽, 극장 등도 줄줄이 경매시장에 등장했습니다.
한편 이를 기회로 경매를 통해 물건을 사려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경제 불황으로 자산의 가치가 하락했을 때 미리 물건을 사두면 나중에 가격이 올랐을 때 돈을 벌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한 번 유찰된 물건은 경매에 다시 나올 때마다 최저 금액이 20, 30%씩 낮아지기 때문에 잘 고르면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심리도 작용합니다.
빚을 갚기 어려운 사람의 처지에서는 법원이 매몰차게 재산을 처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법원에서 경매 절차가 원활하게 진행되면 채무관계가 신속하고 공정하게 정리되고 시장의 자금 순환이 좋아지는 순기능도 있습니다. 지난해 말 불황의 여파로 등장한 각종 매물로 올해 경매 법정이 유난히 북적였지만 내년에는 경기가 좋아져 법정에 ‘불황형 매물’은 줄어들기를 바랍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