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다문화-죽음 등 현실적 소재詩는 서정시의 새로운 실험작 많아
《새해 첫날 동아일보 지면을 장식하며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할 주인공은 누가 될까.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이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렸다. 올해도 국내뿐 아니라 중동과 남미, 동유럽 등 해외 각지에서 응모가 이어졌고 연령층도 10대 중학생부터 70대까지 폭넓었다. 예심위원들은 “그야말로 ‘국민적 문학축제’라는 신춘문예의 특성을 실감했다”고 입을 모았다. 예심에는 우찬제 손정수 조경란 천운영(이상 단편소설 부문), 김동식 한강(이상 중편소설 부문), 박형준 문태준(이상 시 부문), 김미희 김대승(이상 시나리오 부문), 정지욱 씨(영화평론)가 참여했다.》
문장력-구성력 수준 향상
언어실험-난해한 詩줄어
시나리오 소재 다양해지고
영화평론 응모작 2배 늘어
“소설은 사회 이슈를 반영한 작품이 많았고 시는 서정의 새로운 실험을 보여주는 작품이 두드러졌습니다.”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9층 회의실에선 2010년 신춘문예 예심이 열렸다. 왼쪽부터 김미희, 김대승, 우찬제, 박형준, 조경란, 정지욱, 문태준, 한강, 김동식, 손정수, 천운영 씨. 이훈구 기자
단편소설 중편소설 시 부문 예심위원들은 “문장력이나 글의 구성력 등에 있어서 응모작들의 평균수준이 예년에 비해 향상됐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중편소설을 심사한 소설가 한강 씨는 “시놉시스나 앞부분만 읽고 금방 제외시킬 수 있는 작품이 거의 없어져 심사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작품 소재들은 다문화가족, 신종 인플루엔자, 유아 성폭행,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 루저 논란, 죽음, 교육 등 사회 이슈를 반영한 응모작이 많았다. 전체적으로 환상적인 경험을 다룬 작품들이 줄어든 반면 현실적인 소재들을 묵직하고 진중하게 다룬 작품이 많았다.
이른바 ‘신춘문예용 소설’들이 줄어든 것도 특징이다. 문학평론가 손정수 씨는 “한동안 신춘문예 등단을 겨냥한 정답 같은 소설이 많았는데 올해는 특정한 형식이나 구성, 주제에 얽매이지 않는 작품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우찬제 씨는 “기존 소설문법을 탈피한 개성적인 작품을 등단작으로 선정해온 동아일보 신춘문예의 특성을 감안한 응모자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에서는 서정시의 새로운 실험을 보여주는 작품이 주류를 이뤘다. 시인 박형준 씨는 “과도한 언어실험이나 난해한 시들이 확연하게 줄어든 대신 복고 서정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도시서정과 자연서정을 담은 시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문태준 시인은 “질병, 음식 등을 소재로 현대인의 궁기를 역설적으로 드러낸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반면 현실과 주변 사람에 대한 관심, 사회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은 드물었다. 문 시인은 “한국시가 새로운 감각과 사유를 찾아내는 과도기에 놓인 것 같다”면서도 “현실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시들이 지지부진한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영화평론은 지난해 21명에 비해 응모자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영화평론가 정 씨는 “‘해운대’ ‘마더’ 등 한국영화를 다룬 작품이 많았지만 논의 대상으로 삼은 영화가 한정돼 있어 아쉬움이 든다”고 평했다.
예심위원들은 이야기 자체는 한층 다양하고 풍성해진 데 비해 새로운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기도 했다. “인터넷 글쓰기, 예능프로의 토크쇼 범람 등 이야기하려는 욕망은 매우 커진 데 반해 새로운 그릇에 담으려는 노력이 부족하다”(소설가 조경란 씨) “기존 소설의 패러다임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새로운 패러다임은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문학평론가 손정수 씨) 등 여러 지적이 나왔다.
신춘문예 심사는 15일 본심에 들어갔다. 예심 결과 시 15명, 단편소설 11명, 중편소설 10명이 본심에 올라갔다. 동화 문학평론 희곡 시조 부문은 예심 없이 본심을 진행한다. 당선자는 25일 이전에 개별 통보하며 내년 1월 1일자 신년호를 통해 발표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