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기후회의에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이번에 합의 도출에 실패하면 제1, 2차 세계대전에다 대공황을 합친 것과 맞먹는 경제적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무시무시하게 경고했다. 당장 개과천선하지 않으면 지구가 멸망할 듯한 분위기다. 이 속에서 겁 없이 “진짜냐?” 묻기 쉽지 않은데 미국 뉴욕대의 툰쿠 바라다라잔 교수가 그런 일을 했다. 인터넷신문 ‘데일리 비스트’에 기후변화 관련 단어들을 사전처럼 정리하면서 은근슬쩍 회의론자들을 대변한 것이다.
▷A는 ‘인간이 만든’이라는 뜻의 ‘Anthropogenic’이다. 기후관련 과학자 대부분이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만든 현상이라고 믿지만 다 그렇지는 않다. 지구 자전축의 변동이 작용했다든가, 지금의 기온이 수천수만 년 전에 비해 꼭 상승했다고 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B로 등장하는 덴마크의 학자 비외른 롬보르(Bjørn Lomborg)는 “코펜하겐 회의가 실패하는 게 되레 성공적”이라고 주장한다. 기온을 섭씨 2도쯤 낮추려고 2100년까지 연 27조 유로의 세금을 퍼부어 인간 삶을 규제하고 경제성장에 지장을 주느니 무(無)탄소에너지 연구개발에 힘쓰는 게 비용 대비 훨씬 효율적이고 스마트하다는 거다.
▷C로 나오는 기후게이트(Climate-gate)도 대안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 기후연구소 과학자들이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데이터를 감추거나 조작했다는 e메일이 최근 해킹으로 공개됐다. 세상엔 똑같은 현상을 놓고도 달리 해석하는 일이 적지 않다. 과학에도 단정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있다. 기후변화를 새 기회로 활용하는 건 좋지만 또다른 이데올로기가 되어선 곤란하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