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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순덕]기후변화 ABC사전

입력 | 2009-12-17 03:00:00


코펜하겐 기후회의에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이번에 합의 도출에 실패하면 제1, 2차 세계대전에다 대공황을 합친 것과 맞먹는 경제적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무시무시하게 경고했다. 당장 개과천선하지 않으면 지구가 멸망할 듯한 분위기다. 이 속에서 겁 없이 “진짜냐?” 묻기 쉽지 않은데 미국 뉴욕대의 툰쿠 바라다라잔 교수가 그런 일을 했다. 인터넷신문 ‘데일리 비스트’에 기후변화 관련 단어들을 사전처럼 정리하면서 은근슬쩍 회의론자들을 대변한 것이다.

▷A는 ‘인간이 만든’이라는 뜻의 ‘Anthropogenic’이다. 기후관련 과학자 대부분이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만든 현상이라고 믿지만 다 그렇지는 않다. 지구 자전축의 변동이 작용했다든가, 지금의 기온이 수천수만 년 전에 비해 꼭 상승했다고 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B로 등장하는 덴마크의 학자 비외른 롬보르(Bjørn Lomborg)는 “코펜하겐 회의가 실패하는 게 되레 성공적”이라고 주장한다. 기온을 섭씨 2도쯤 낮추려고 2100년까지 연 27조 유로의 세금을 퍼부어 인간 삶을 규제하고 경제성장에 지장을 주느니 무(無)탄소에너지 연구개발에 힘쓰는 게 비용 대비 훨씬 효율적이고 스마트하다는 거다.

▷C로 나오는 기후게이트(Climate-gate)도 대안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 기후연구소 과학자들이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데이터를 감추거나 조작했다는 e메일이 최근 해킹으로 공개됐다. 세상엔 똑같은 현상을 놓고도 달리 해석하는 일이 적지 않다. 과학에도 단정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있다. 기후변화를 새 기회로 활용하는 건 좋지만 또다른 이데올로기가 되어선 곤란하다.

▷바라다라잔 교수는 Z의 ‘시대정신(Zeitgeist)’ 없이는 코펜하겐 회의에서 결실을 보기 힘들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18일 폐막까지 시간이 남았는데도 ‘합의문 도출에 사실상 실패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번진다. 역시 ABC의 문제다. 미국(America)과 중국(Beijing)이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검증 문제를 매듭짓지 못해 깔끔한 협약(compact)이 나오긴 힘든 모양이다. 그래도 지구는 계속 돌 것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