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α, X… β, XX… J… K, 초인종 옆 범죄의 코드?

입력 | 2009-12-19 03:00:00

오피스텔 ‘알파벳 괴담’

서울지역 원룸 등에 표시
관리원 집배원도 정체 몰라
“α=빈집, β=여자 집”
인터넷 루머에 공포감




 18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오피스텔 현관문 옆에 누군가 쓴 의문의 기호. ‘α, β, K, J’ 등이 쓰여 있다. 인터넷에서는 이 기호가 도둑들이 남긴 흔적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김미옥 기자

“너희 집 초인종 옆을 봐. 무슨 표시가 있지 않은지….”

17일 오전 1시경 여대생 박모 씨(23)는 친구에게서 뜬금없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박 씨는 서울 동작구 소재의 한 오피스텔에 혼자 살고 있다. 문자메시지를 무시하고 자려던 박 씨는 호기심이 동해 현관문을 열고 나가 초인종을 살폈다. ‘β, XX’ 누군가 볼펜으로 써놓은 알 수 없는 표시가 있었다. 놀란 박 씨는 옆집 초인종도 살폈다. 초인종 옆 한 귀퉁이에 ‘α, X’라는 글씨가 있었다. ‘J’ 또는 ‘K’ 등 여러 알파벳이 섞여 있는 집도 있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은 ‘β’야. ‘X’는 혼자 있는 걸 목격한 횟수고.” 친구의 문자메시지에 박 씨는 밤새 뒤척였다.

서울 시내 오피스텔과 원룸, 주상복합 아파트 현관문 옆에 알 수 없는 표시가 발견돼 주민들이 떨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혼자 사는 여성이 많은 오피스텔 등에 도둑이나 강도가 표시를 남겨놓았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 α는 남자가 사는 곳, β는 여자만 사는 곳을 뜻한다는 이야기부터 α가 빈집이고, X는 여성이 혼자 있는 걸 목격한 횟수라는 말도 있다. ‘파마머리를 한 여자 얼굴이 그려져 있다’는 등 누가 살고 있는지를 세밀하게 그림으로 그려놓았다는 증언도 있다. 이 표시들을 절도범이나 강도가 범죄를 위해 남겨둔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혼자 사는 대학생이 많은 서울 관악구 일대 오피스텔 곳곳에서도 이런 표시가 발견됐다. 관악구 봉천동의 D오피스텔 관리사무소는 18일 오피스텔 현관마다 그려진 표시를 보고 곧바로 조사에 들어갔다. 이 오피스텔은 24시간 경비원이 지키고 있지만 지하주차장을 통해 외부인이 출입할 수 있다. 1층 엘리베이터 앞에는 폐쇄회로(CC)TV가 있지만 복도에는 없다. CCTV 기록을 봐도 누가 표시를 남긴 건지 알 수 없었다.

최근 외부 방역업체가 방역 작업을 벌인 터라 의심이 됐지만 방역업체는 “전혀 모르는 내용”이라고 했다. 소방시설 점검은 내부 관리인이 함께 했는데 초인종 옆에 뭔가 남기는 걸 본 적은 없었다고 했다. 우체국 집배원이 남긴 것도 아니었다. 10년 넘게 집배원 생활을 하고 봉천동 일대에서만 1년 넘게 우편물 배달을 했다는 집배원 정모 씨(40)는 “사람이 안에 없으면 전화를 걸거나 우편물 도착 확인서를 남기지 표시를 해두는 일은 절대 없다”고 말했다. α, β, C, J, X 등의 문자가 신문사를 뜻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지만 한 신문사 지국은 “신문사마다 보급소가 다르고 신문 배달원의 배달카드에 안내가 잘돼 있어 특정한 표시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D오피스텔 관리사무소는 일단 표시를 삭제하기로 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4동 한 아파트도 최근 알 수 없는 표시 때문에 불안하다는 주민의 신고를 받고 곧바로 표시를 지웠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외부인이 남긴 표시가 발견돼 모두 지웠다”며 “복도에 낯선 사람이 있을 경우 바로 신고해 달라”고 입주민들에게 당부하는 공지를 붙였다.

인터넷에는 두려움에 경찰에 신고를 했다는 글도 올라와 있다. 경찰 관계자는 “도둑이나 강도는 대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며 “아직까지 이와 관련한 신고가 접수되지는 않았지만 주민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