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CO₂ 감축 검증싸고 갈등
같은 시간에 따로 회견 신경전
의장국 밀실합의 새나가 역풍
희망의 ‘호펜하겐’에서 합의문 없는 ‘노펜하겐’ 될수도
‘모든 것이 합의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합의된 것이 아니다(Nothing is agreed until everything is agreed).’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고 있는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가 18일 폐막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각국 협상단 사이에 자주 회자되고 있는 말이다. 각국의 정치적 의지를 담은 ‘포괄적 선언(umbrella declaration)’을 채택하기 위한 회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 치열한 미국과 중국의 기 싸움
미국과 중국은 협상 시작 전에는 희망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코펜하겐을 방문하겠다고 밝혔고 중국은 ‘탄소집약도’라는 생소한 개념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감축 목표를 발표했다. 그러나 막상 협상이 시작되자 두 나라는 사실상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17일 발표한 미국 등 선진국의 개도국 원조 계획은 구체적 진전을 보였지만 개도국 입장에선 미흡한 수준이다. 중국의 감축 계획에 대한 검증 문제도 계속해서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미국은 중국이 발표하는 수치를 믿을 수 없으니 검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중국은 주권에 관한 문제라며 반대하고 있다. 18일 기대를 모았던 오바마 대통령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연설도 원론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양국은 양자 대화를 갖고 합의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양국은 이날 마지막 기자회견도 같은 시간에 하는 등 끝까지 신경전을 벌였다.
○ 주최국 덴마크에 따가운 시선
이번 회의의 의장국이자 개최국인 덴마크는 원활한 회의 진행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덴마크의 리더십 추락은 회의 초기인 8일 덴마크가 일부 유럽 국가들과의 밀실 합의에서 만든 ‘코펜하겐 합의서’ 초안이 외신에 공개되면서 시작됐다. 이 합의서 초안에는 “선진국과 개도국을 가리지 않고 의무적으로 온실가스를 50% 이상 감축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중국 등 개도국은 즉시 강력하게 반발했다. 덴마크의 잘못된 판단으로 한순간에 선진국과 개도국 간 갈등의 골이 크게 깊어진 것이다. 이후 덴마크는 협상 주도권을 빼앗겼다. 다급해진 덴마크는 개도국의 의견을 상당 부분 반영한 합의문 초안을 다시 만들었지만 선진국은 “개도국 요구가 지나치게 많이 반영됐다”며 반발했고 개도국은 “협상문 작성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했다.
“(협상장의 TV를 가리키며) 이런 것도 만드는데 한국이 개도국입니까?”
한국 협상단이 자주 듣는 말이다. 삼성과 LG전자의 TV들이 협상장의 디스플레이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6일 회담장에서 열린 녹색성장 홍보 이벤트에서도 한국의 녹색성장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그동안 서구의 발전모델을 따라만 하던 한국이 처음으로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있다는 것. 그러나 정작 이번 코펜하겐에서는 한국의 역할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을 100으로 봤을 때 한국의 배출량은 약 1.2 수준(2005년 국제에너지기구 기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10%를 감축한다고 해도 0.12가 줄어들 뿐이다. 20%를 넘게 배출하는 중국이 5%를 감축하면 한국의 전체 배출량에 맞먹는 양을 줄일 수 있다.
○ “기후문제를 글로벌 의제 만든 건 성과”
이처럼 이번 회의는 당초 기대와 달리 정치적 선언에 그쳤다는 지적이 많다. 합의문에 각국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가 구체적으로 들어가지 않은데다 개도국 펀드 역시 직접지원인지 관세감면인지 구체적 방식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회의를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는 의견도 많다. 최소한 전 세계인들에게 기후변화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웠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정래권 기후변화대사는 “일부만 관심을 가졌던 기후변화라는 의제를 무대 중앙으로 끌어낸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