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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 그 후]남북정상회담 싱가포르 비밀접촉

입력 | 2009-12-21 03:00:00

임태희, 김양건과 회동 사실로 “MB와 납북자 동반귀환” 요구
최종협상서 北반대로 무산




정부가 올해 남북 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놓고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이끄는 비선(秘線)에 이어 통일부가 주도하는 당국 간 라인을 가동해 북한과 접촉했던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정부는 정상회담 장소와 관련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해야 한다는 요구를 양보하는 대신 평양 등 북측 지역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이명박 대통령이 국군포로와 납북자 일부를 영구 귀환 또는 일시적으로 남측을 방문할 수 있도록 데리고 돌아오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최종 협상 과정에서 북측의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올해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으로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등을 남측에 파견한 이후부터 ‘올해 안에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는 의향을 타진해 왔다. 정부는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시절부터 대북 문제에 관심이 있던 임 장관을 북측과 접촉하도록 했다. 여당 관계자는 “임 장관은 서울에 온 조문단을 극비리에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임 장관은 10월 중순 싱가포르에서 김 통전부장과 원동연 부부장을 만나 정상회담 의제 등을 조율했으며 양측은 북핵 문제 논의와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 해결 등 주요 의제에서 상당한 의견 접근을 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남북은 정상회담에서 핵 문제를 논의하고 정상회담을 상시화하는 방안에 의견 접근을 이뤘다”고 전했다. 또 “남측은 일부 국군포로 및 납북자들의 송환을 요구했으며 이에 대해 북측은 일부가 남측을 방문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고 송환도 검토할 수 있다는 태도를 내비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북측은 정상회담의 대가로 금강산 및 개성관광 재개와 남측의 대규모 식량 지원 등을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결렬후 김양건 3시간 질책

그러나 통일부 등 정부 내 일각에서 비선 접촉의 형태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은 그동안 남북 대화의 투명성을 강조해 온 정부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됐고 11월 열린 후속 대화는 ‘통-통(통일부와 통전부) 라인’이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 양측은 11월 7일과 14일 두 차례 개성에서 비밀접촉을 했지만 정상회담 이후 남측을 방문할 국군포로와 납북자 수 및 그에 대한 경제적 대가 등을 놓고 논쟁을 벌이다 협상이 일단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부 내에서는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 소식통은 “통일부가 북측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받아내려 욕심을 내다 임 장관이 이룬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는 평가와 대북 협상 경험이 거의 없는 임 장관이 애초부터 안 될 일에 매달렸다는 평가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소식통은 “북한이 임 장관과 나눈 대화가 어느 정도 진정성이 있었는지에 따라 향후 역사의 평가가 달라질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처음부터 북측이 제시하는 조건과 국익 등을 따져 정상회담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는 유연한 태도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를 앞두고 남측의 대규모 경제지원을 노리고 회담 성사를 지시했던 김 위원장은 회담이 최종 결렬된 뒤 김 부장을 불러 3시간 넘게 호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11월 중순 이후 통일부와 현인택 장관을 실명으로 비난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북측 매체들은 최근에도 남측이 제기한 정상회담의 조건들을 반박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19일 “북핵 문제는 북남 관계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북남 관계 개선의 장애물이 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이 신문은 11일자에선 “국군포로니 납북자니 하는 것은 아무 실체도 없는 유령에 불과하다. 포로 문제는 정전협정 때 다 해결된 문제이며 의거 입북자는 있어도 납북자는 애당초 있어 본 적이 없다”며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소식통들은 관측했다. 북한은 통일부와의 대화가 결렬된 뒤 다시 다른 채널을 통해 대화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북핵 포기에 도움이 되고 국군포로 등 인권 문제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내년도 정세전망 보고서에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장기적인 교착상태에 빠지면 북한은 경제지원 및 금강산관광 재개를 받아내기 위해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요구를 대폭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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