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전체가 미술품… 마을로 스며든 예술땅 속 미술관엔 모네 등 거장 작품빈 집-대중목욕탕, 작품으로 탈바꿈1년 30만명 찾는 국제적 명소로
나오시마 지추미술관에 전시된 월터 드 마리아의 ‘Time/Timelss/No Time’(2004년). 천장에 있는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매순간 작품의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낸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이 미술관에서는 자연과 건축, 미술이 함께 호흡하고 서로에게 스며들면서 긴 울림을 만들어낸다. ⓒ photo by Michael Kellough
인구는 3600여 명, 면적은 약 8km²로 서울 여의도와 비슷하다. 일본 중남부 해안의 세토나이카이 해상국립공원에 자리한 작은 섬 나오시마(直島). 젊은층은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흔히 볼 수 있는 시골마을이다. 한데 지금 이 섬은 해마다 한국의 미술애호가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30만여 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국제적 명소로 떠올랐다. 여행전문지 ‘트래블러’지가 선정한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7대 명소’로도 뽑혔다.
한적한 섬이 각광받기까지에는 한 기업인의 노력이 숨어 있다. 일본의 출판 교육 기업인 베네세 그룹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이다. 세상을 바꾸는 예술의 힘을 믿었던 그는 1989년부터 섬 전체를 지구상에서 유일한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첫발을 내디딘다. 꿈이 현실로 가는 길목에서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베네세 하우스와 지추미술관이 생겨나고 섬 곳곳에 현대미술의 거장들의 작품이 들어섰다. 섬 마을의 자연과 예술이 경계를 허물며 매혹적 융합을 이뤄낸 것이다.
○ 현대예술의 신전 나오시마는 우노 항이나 다카마쓰 항에서 페리를 타고 가야 한다. 12월이라곤 하지만 섬 날씨는 늦가을 정취가 풍긴다. 선착장에 내리면 야요이 구사마의 거대한 빨간 호박이 반겨준다. 여기서 해안도로로 10분쯤 차로 가야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지추미술관이 나온다. 매표소에서 미술관 가는 길에 클로드 모네가 좋아했던 꽃과 나무를 심어놓은 ‘지추 정원’이 나온다. 2004년 설립된 미술관은 땅 위로 솟은 건물이 아니라 땅 속에 꼭꼭 숨어 있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기 위해’ 지은 미술관에는 모네, 월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의 작품 9점만 놓여 있다. 공통점은 자연과 빛을 주제로 한 작품이란 것.
자연광선 아래서 감상하는 모네와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은 색다른 울림을 준다. ‘수련의 방’에는 모네 그림 5점이 놓여 있다. 수련의 색상이 빛을 받으며 시시각각 바뀌는 듯한 환시를 불러온다. 지름 2.2m의 검은 돌로 만든 구와 27개의 황금빛 나무 오브제는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 계단으로 이어진 공간에 자리한 작품은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며 경건한 느낌을 자아낸다. 빛을 소재로 만든 터렐의 작품들. 관객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 신비함을 체험하는 작업이다.
이들과 더불어 기념비적 느낌보다 절제된 공간으로 설계된 안도 다다오의 건물 자체도 중요한 작품이다. 긴 복도로 이어지는 동선과 기하학적으로 분할된 공간은 관객의 침묵을 유도하며 예술을 기리는 신전 같은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흰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전시장별로 관람인원을 8명씩 제한하는 등 최대한의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특이한 방침도 눈길을 끈다.
○ 자연과 예술, 전통과 현대의 소통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지추미술관 전경. 땅위로 솟은 건물이 아니라 땅속으로 숨어들듯이 자리 잡은 공간이다. ⓒ photo by Fujitsuka Mitsumasa
지추미술관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베네세 하우스는 1992년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숙소 겸 미술관 등 4개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미술관에는 브루스 나우먼의 네온 설치작품 ‘100 live and Die’를 비롯해 야니스 쿠넬리스, 야스다 겐, 리처드 롱, 데이비드 호크니, 앤디 워홀 같은 거장의 작품이 즐비하다. 전시장뿐 아니라 해변 곳곳에도 작품이 설치돼 있다. 칼 아펠, 니키 드 생팔의 생동감 넘치는 조각, 댄 그레이엄의 미니멀한 설치작품, 스기모토 히로시의 사진 등 18개의 작품을 만날 기회다.
빈 집을 복원해 현대미술작품으로 변신시킨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는 옛 것과 오늘의 만남을 통해 일본 전통과 미학을 과시한다. 미야지마 다쓰오 등 현대미술가의 작품과 낡고 오래된 집의 기억을 버무린 작업이다.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오타케 신로의 ‘I ♥ 湯’ 목욕탕 프로젝트를 챙겨봐야 한다. 실제 영업하는 공중목욕탕을 일본 전역에서 가져온 잡동사니 같은 물건으로 꾸며 지역민과 관람객이 직접 소통하는 공간이 탄생했다.
세상 어디서도 보기 힘든 곳에서 현대예술을 만날 수 있는 나오시마. 평범한 마을은 자연과 건축, 미술이 스며들어 ‘예술천국’으로 되살아났다. 외딴 섬에 새 생명을 선사한 지역재생 프로젝트. 산업이 아닌, 문화예술의 내공으로 성취한 꿈이라 더욱 값져 보인다.
나오시마=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