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열 전 경원대 교수가 국가대표 농구팀 감독 시절 즐겨 썼던 전술이 있다. 공격 제한 시간 30초를 거의 다 쓴 다음 확실한 기회가 생겼을 때 슛을 쏘는 ‘지공전(遲攻戰)’이다. 중국 등 강팀과 만났을 때 이 전술을 사용하면 상대방이 득점할 수 있는 시간을 최소화해 전세를 뒤집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방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 농구팀은 1982년 인도 뉴델리 아시아경기에서 이 전술로 중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최근 만난 행정안전부 고위 관료는 정부가 추진 중인 행정구역 자율통합이 당초 계획보다 지지부진한 이유를 설명하며 방 전 교수 사례를 들었다. 통합대상 기초 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들이 ‘자리보전’을 위해 지공전을 펼치고 있다는 것. 통합으로 기존 시나 군이 없어지면 단체장이나 의원 자리도 줄어드는 만큼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시간을 끌어 통합을 무산시키려고 한다는 게 이 관료의 분석이다. 일단 지방선거가 치러지면 법적으로 보장되는 임기 때문에 통합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노린 포석이라는 얘기다.
통합의 걸림돌은 이것 말고도 있다. 바로 통합대상 기초단체 소속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1995년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후 광역단체로부터 각종 인허가권을 넘겨받아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 왔다. 기업들이 중앙부처나 광역단체보다는 기초단체에 더 많은 로비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각에서는 ‘지공전(地公全·지방공무원전성시대)’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들로서는 시나 군이 통합이 되면 기득권을 포기해야 할 공산이 큰 만큼 통합에 부정적이다. 실제로 일부 통합 대상 기초단체 공무원들은 통합을 위한 여론조사 과정에 조직적으로 개입해 통합을 무산시킨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행정구역 통합은 기득권을 잃어야 하는 일부 인사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주민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사업이다. 장기적으로 공무원 정원을 줄여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쓰레기소각장이나 문화체육센터 등 각종 공공시설을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어 중복투자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물론 상대적으로 부유한 기초단체가 일시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 통합 후 재정이 열악한 기초단체로 통합자치단체 재원이 쏠릴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교부금 인상과 각종 숙원사업에 대한 자금 지원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줄 계획인 만큼 ‘쏠림’ 현상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제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권력 통제를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 헌법이 보장하는 제도다. 기저에는 주민들에게 더 많은 이익과 권리를 줘야 한다는 목적이 깔려 있다. 최근 일부 통합대상 지역에서 나타나는 조직적인 행정통합 반대 움직임을 보면 ‘주객이 전도’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송진흡 사회부 차장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