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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우리 대학 스타/유해발굴 최고 권위자 충북대 박선주 교수

입력 | 2009-12-23 03:00:00


“6·25 희생 5500여 애국혼 찾아냈죠”

6·25 전사자와 민간인 집단희생자, 안중근 의사 등의 유해발굴에 참여하고 있는 박선주 교수가 충북대 유해감식센터에서 유해발굴 과정과 상태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기우 기자

6·25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젊은 형제의 비극적인 운명과 사랑을 다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 배우 장동건(이진태 역)과 원빈(이진석 역)을 주연으로 제작돼 2004년 초 개봉된 이 영화는 역대 한국영화 관객동원 3위(1174만 명)를 기록했다.

이 영화는 국방부가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2000년에 시작한 유해발굴사업 중 찾아낸 한 구의 유해와 유품이 소재가 됐다. 국군 제1사단이 북한군 3개 사단과 치열한 공방을 벌인 ‘다부동 전투’ 지역에서 ‘최승갑’이라는 이름이 적힌 유품이 발견된 것. 유해발굴단은 이를 근거로 부인과 딸, 남동생 등을 찾아냈다. 유족들은 유해 발굴 현장에서 직접 유품을 확인했고 이 장면이 한 방송사 특집프로그램에 방영됐다. 이를 우연히 본 강 감독이 시나리오를 써 영화가 만들어진 것. 영화에서는 삼각자가 아닌 만년필에 최 씨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으로, 남동생도 함께 입대하는 것으로 각각 각색됐다.

당시 이 발굴을 지휘하고 영화촬영 때도 강 감독을 도와준 인물이 국내 유해 발굴분야 최고 권위자인 충북대 박선주 교수(62·고고미술사학과 체질인류학 전공)다. 박 교수의 ‘유해 발굴 인생 외길’이 시작된 것은 1997년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에서 한국인 강제 징용자 유해 발굴에 참여하면서부터. “학자나 전문가들은 학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학문도 학교 밖으로 나가 사회에 공헌해야죠.” 이런 신념이 그를 현장으로 이끌었다.

2000년 찾아낸 유해-유품 영화 ‘태극기…’ 소재 되기도
안중근의사 유해발굴 진행 “자료 찾아 언젠간 성공할것”


2000년 국방부가 시작한 국군유해발굴사업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처음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의지’만 빼놓고 제대로 준비된 게 없었던 것. 박 교수는 “유해 발굴은 문화재 발굴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며 전문가의 필요성을 제기해 해부학자, 유전자(DNA) 분석학자, 한국사 및 군사학 전공자 등으로 구성된 발굴단을 꾸렸다. 또 관련 학문을 전공한 장병들을 발굴단에 포함시키고, 유해 발굴 전문 부대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을 창설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2007년부터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로부터 민간인 집단희생자 유해발굴사업을 제의받고 충북 영동군 노근리 사건과 충남 공주시 상왕동 민간인 학살사건 등 여러 집단희생 사건의 유해 발굴 작업을 지휘했다. 지금까지 박 교수가 발굴한 국군 전사자는 4000여 구, 민간인 집단희생자는 1500여 구다.

박 교수가 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이다. 지난해 3월 안중근 의사 한중유해발굴단장으로 중국 다롄(大連)시 뤼순(旅順)감옥 뒷산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안 의사 유해 매장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 북한과 공동조사 및 유해 발굴도 추진했지만 핵문제 등으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박 교수는 희망을 갖고 있다. 그는 “일본 어딘가에 안 의사에 대한 자료가 있을 것”이라며 “정부와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본업인 강의를 빼놓을 수 없는 데다 발굴 작업의 특성상 1년 내내 전국을 다니다 보니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 지난해에는 전남 진도군 갈매기섬에서 발굴 작업을 하다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껴 진단을 받은 결과 심장 이상으로 판명돼 수술을 받았다. 앉아서 하는 작업이 대부분이어서 무릎 상태도 엉망이다. 발굴된 유해를 연구실에서 자세히 분석하고 기록하다보면 먼지를 마시기 일쑤여서 폐도 나빠졌다. 하지만 유해 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 유족과 역사에 알려줄 수 있다는 보람에 환갑을 넘긴 나이도 잊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장 답사 때마다 운전을 해주고 다녀와서도 사진과 비디오 촬영 등 자료정리를 도와주고 있는 아내(박데비 씨)는 그의 큰 조력자다.

박 교수는 “전사자 유해 발굴과 달리 민간인 집단희생자 유해 발굴은 올해가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커 안타깝다”며 “보수와 진보를 떠나 냉전시대에 안타깝게 희생된 영령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이 사업이 계속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