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5만 달러를 받았는지는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어떻게 보더라도 2006년 12월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의 모임은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대한통운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놀기가 답답하다”며 공기업 사장자리를 구걸하는 사람과 일국의 총리와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이 동석했으니 흡사 곽 전 사장을 위한 취직 대책회의같이 돼버렸다. 민주당이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정치공작이라고 비난하고, 노무현 정부 사람들이 무슨 ‘정치공작 분쇄 공동대책위’라는 조직을 만들어 세몰이 식으로 끌고 가려는 것은 진실을 가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이 사건에 좀 더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 같은 인사청탁 비리가 지난 정부 시절에만 있었겠느냐 하는 점이다. 오늘의 이명박 정권에선 이런 비리의 재판(再版)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공직자와 정치인을 포함해 지도자급의 비리를 없애는 것이 국격(國格)을 높이기 위한 여러 사안 중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이 말이 퇴임 후까지 지켜질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정부 출범 후에도 추부길 전 대통령 홍보기획비서관을 비롯해 이 대통령의 측근과 주변인사들 역시 의혹의 도마에 올랐다. 등잔 밑이 어둡듯 대통령도 모르는 사이 권력의 복판까지 파고들 수 있는 것이 부패의 속성이다.
지금도 공기업을 비롯해 권력의 영향력이 닿는 각종 기관의 ‘자리’에 특정 인맥이 파고들어 끼리끼리 해먹고 있다는 뒷말이 적지 않다. 정권 실세가 사실상 공기업 인사의 면접시험을 보고 다닌다는 논란도 있었다. 현 집권세력은 정권이 끝난 뒤 한 전 총리와 닮은꼴의 의혹에 휩싸일 소지를 완전히 불식시켰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