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가 깃든다는, 이 성탄절 아침에, 이런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먼저 나를 슬프게 한다.
4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이 ‘밤 10시 이후 학원교습 제한’을 밝힌 지 반년 뒤, 교육과학기술부 이주호 제1차관이 21일 다시 똑같은 내용을 발표할 때, 정책의 옮고 그름을 떠나, 그 반년 동안 이 정부가 뭘 했나 하는 의문이 들지만, 그 갈팡질팡 허송세월을 반성하기는커녕, 외국어고에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사교육 경험을 ‘자백’하라는 황당한 정책을 추진한다는 뉴스가, 크리스마스이브에 곤히 잠든 아들딸의 얼굴에 겹쳐 나를 슬프게 한다.
3월 여야 합의로 요란하게 출발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지방과 정치학계가 “중앙정치에서 벗어난 풀뿌리 지방자치를 해야 한다”며 요구한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는 묵살하고, ‘매년 두 차례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고비용·저효율이라 연 1회로 줄이자’는 요청에도 눈감고, ‘정치자금법 재판을 1년 안에 신속하게 끝내도록 하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치자금법 개정 의견도 잘라버린 채,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정치인이 자진 반납하면 형사처벌을 면제해주는 ‘정치개악’을 하려다, ‘야합’이라는 비판에 화들짝 꼬리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나’ 하다가 ‘역시나’ 9개월을 날렸다는 생각이 나를 슬프게 한다.
멀쩡한 시민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오게 할 정도로, 진실을 왜곡한 지상파 방송의 독과점 구조를 깰 미디어법이, 7월 격렬한 몸싸움 끝에 국회에서 통과됐으나, 이에 불복해 민주당 등 야당의원들이 헌법재판소에 낸 미디어법 권한쟁의 심판사건에, 헌재가 ‘국회 가결은 유효하다’고 결정했건만, 다시 18일 헌재에 미디어법 권한쟁의 심판을 낸 야당의 오기는 말할 것도 없고, 미디어법 국회 통과 직후 “연내에 종합편성과 보도전문 채널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가, 22일에는 ‘내년 상반기에도 종합편성채널 선정이 불가능하다’고 밝혀, 적어도 반년을 날린 이 정부의 무기력, 혹은 눈치 보기가 나를 더없이 슬프게 한다.
이런 쌈박질의 와중에, 도무지 합의라고는 모르는 여야가, 아프가니스탄 지방재건팀(PRT) 보호 병력 파견을 위한 파병 동의안의 국회 심의·처리는 내년 2월로 미루기로 ‘합의’했다는데, 정치싸움에 몰두해 국익이 걸린 외교는 뒷전으로 미뤄버린 이 나라가, 올 한 해 동안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고도 달라질 줄 모르는 한국정치가, 우리를 더없이 슬프게 한다. 스크루지 영감도 개과천선했다는 이 성탄절 아침에….
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