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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홍찬식]99엔, 즉 1277원

입력 | 2009-12-25 03:00:00


일본 나고야에 있는 미쓰비시 공장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전투기를 만들었다. 1944년 조선의 어린 소녀들은 이 공장에 ‘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투입됐다. 전쟁 중에 노동력이 크게 부족해지자 멀리 조선에 있는 어린 소녀까지 작업에 동원한 것이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던 양금덕 씨는 “일본에 가면 학교에 갈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다”는 교사의 말을 믿고 이 공장에 왔다. 그는 1년 넘게 힘든 노동에 시달렸지만 학교는 구경도 못했고 월급도 받지 못했다. 회사 측은 “월급은 연금으로 불입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이제 할머니가 된 당시 소녀들은 이곳에서 일했던 사실을 평생 숨기고 살았다. ‘정신대’라는 명칭 때문에 군위안부로 오해 받을 수가 있었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 도움으로 1999년 미쓰비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소송은 지난해 도쿄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기각되면서 실패로 끝났다. 강제동원 피해자의 보상 문제는 1965년 한일협상 때 종결됐다는 게 이유였다.

▷이들은 일본의 사회보험청에 다시 기대를 걸었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불입한 후생연금의 탈퇴 수당을 지급해 달라는 신청을 내놓고 있었다. 사회보험청은 “과거 기록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질질 끌어오다가 올해 9월 연금 납입증명서를 찾았다고 밝혀 보상 전망이 밝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사회보험청이 피해자 7명에게 지급할 액수는 한 사람당 99엔(약 1277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자 김성주 씨는 어제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회사에 월급을 달라고 했더니 ‘네 나라에 돌아가면 부쳐주겠다’고 대답했으나 64년이 지나도록 아무 연락이 없었다”면서 “공장에서 잠도 못자고 일한 대가가 99엔이란 말인가”라며 분노했다.

▷깊은 상처를 안고 돌아간 피해자에게 일본 정부는 60여 년 전에 받을 수 있었던 액수를 기준으로 지급 금액을 결정했다.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에 절망감을 갖게 된다. 돈으로도 이들의 아픔을 달랠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사과의 마음이 있었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론은 없었을 것이다. 피해자의 정서에 눈을 감는 한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서 앞으로 나갈 수 없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