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오 의장 ‘여야 지도부와 동반 사퇴’ 배수진 이후예산안 처리 압박 초강수에이강래 ‘직권상정 기류’ 견제
김 의장은 이날 오전 고성학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에게 전격적으로 성명 발표를 지시했다. 여권 지도부와도 사전에 물밑 교감이 없었다고 한다. 김 의장의 한 측근은 “1.2%에 불과한 4대강 살리기 예산 때문에 국회가 국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예산을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여야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국민은 국회의 존재 이유를 부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김 의장은 이 같은 사태 발생에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의장실의 또 다른 관계자는 “최악의 상황이 올 경우 내년을 위해서라도 국회의장단과 여야 지도부를 모두 교체해 정치권이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며 “김 의장이 18대 국회의 구태정치를 모두 끌어안고 산화하는 ‘논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절박감도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예산안을 반드시 연내에 처리해야 한다’는 여론의 압박도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여권에서는 “김 의장의 성명 발표로 직권상정을 통한 강행처리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가 김 의장의 중재로 이날 마련된 협상장을 박차고 나오면서 “김 의장이 중재를 하려는 것인지 2 대 1로 강압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기류를 겨냥한 것이다. 특히 예산안의 경우 쟁점법안과 달리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사안이어서 여당으로선 강행처리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작다는 판단도 민주당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이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연내 처리”의 명분을 뛰어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결국 김 의장의 사퇴 카드가 연내 직권상정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한나라당이 대의명분을 내걸고 강행처리를 시도할 경우 여당 출신인 김 의장이 뒷짐만 지고 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