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에 따르면, 공자는 노나라 哀公(애공) 6년인 기원전 489년에 衛(위)나라를 떠난 후, 陳나라와 蔡나라를 거쳐 楚(초)나라로 향했다. 당시 陳은 楚(초)에 굴복하고 蔡는 吳(오)에 굴복한 상태였고 吳와 楚는 전쟁을 반복했다. 그런데 陳과 蔡의 大夫들은 모두, 초나라가 공자를 등용하면 자신들에게 불리하리라 여겨 사람들을 보내 들판에서 공자 일행을 포위했다. 양식이 끊어져 굶주린 제자들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子路는 불만을 품고서 공자를 뵙고는 “군자라도 이토록 곤궁할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항의했다.
興은 일어섬, 온은 불만을 품음, 見(현)은 윗사람을 알현함이다. 斯는 ‘이에’의 뜻을 지닌 접속사다. 濫은 넘쳐날 溢(일)과 같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