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의 담벼락, 화장실 문, 책상 위엔 학생들이 써 놓은 낙서가 즐비하다. 특히 고등학교 교실엔 “2011학년도 ○○대 퀸은 바로 나!” “대학문은 좁지만 나는 날씬하다”처럼 목표대학이나 좌우명이 빼곡히 적힌 책상이 많다.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예민한 나이의 학생들에게 낙서는 ‘욕망’의 배출구요 ‘유희’의 통로. 요즘 중고교에선 어떤 낙서가 주를 이룰까?
‘학교 공공기물 손상 죄’로 선생님에게 야단맞지는 않을까? 고2 문모 양(18·서울 구로구 고척동)은 “답답하고 지루한 교실에서 이런 재미라도 없으면 무슨 맛으로 공부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문 양은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에게 부탁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2PM’ 멤버들의 얼굴을 책상 위에 그려달라고 했다. 문 양은 “공부가 무작정 하기 싫을 때, 집중이 안 될 때 책상 위에 그려진 오빠들의 얼굴을 보면 힘이 절로 난다”면서 “이 정도는 선생님들도 못 본 척하고 넘어가 주신다”고 말했다.
반면 선생님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교실 벽 귀퉁이나 화장실 문 안쪽엔 ‘폭로성’ 메시지가 대세. 평소 불만을 품었던 선생님에 대한 항의성 글이나 비난을 받을 만한 친구의 행동을 익명성 뒤에 숨어 공개하는 것이다.
‘○○선생님, 숙제 좀 그만 내주세요’처럼 공감 가는 화장실 문 낙서엔 ‘동감’ ‘이 낙서 선생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보내줘’ 같은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고2 조모 군(18·경기 평택시)은 “화장실 문 위엔 ‘3학년 ○○○와 1학년 ○○○가 사귄다’ ‘누구와 누구가 삼각관계다’ ‘2학년 2반 ○○○의 몸무게는 ○○kg’처럼 당사자에겐 약점이 될 만한 내용이 많이 적혀 있다”면서 “몇 층 화장실에 이런 낙서가 써 있다는 말이 돌면 낙서 내용을 보기 위해 그 화장실에만 수십 명의 학생이 몰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고1 소모 양(17·서울 은평구 구산동)은 “처음 이성친구와 사귀기 시작할 땐 낙서에 이름이 공개된 당사자로선 은근히 기분 좋게도 느껴지지만 문제는 헤어지고 난 다음”이라며 “친한 친구가 남자친구랑 헤어져 이와 관련된 낙서들을 지우느라 물파스를 들고 온 학교 화장실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결국 낙서가 하도 많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