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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창을 통해 본 2009 대한민국

입력 | 2009-12-29 03:00:00

‘자살’ 바꾸면 ‘살자’… 판사 얘기 큰 공감

탈북여성 구출 위해 선뜻 희사
‘얼굴없는 천사’ 소식으로 새해 시작

쌍용차 파업때 공장 안팎 대치
‘형제’마저 갈라놓은 갈등현장 중계

낯선 사람에 장기-각막 이식 등
본보보도후 각계 온정 잇달아




《2009년 동아일보 창(窓)에는 따뜻한 미담부터 가슴 아픈 죽음까지 다양한 사연이 담겼다. 감동과 웃음을 선사하고 때로는 독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이산가족, 탈북자 등 아픔을 지닌 사람들의 목소리와 용산 참사, 강호순 살인 피해자, 쌍용차 파업 등 시대적 사건을 겪은 사람들, 또 희망과 기쁨을 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모두 49건의 ‘창’이 독자들을 찾았다.》올해 첫 번째 창은 2008년 4월 중국 옌지 조선족에게 붙잡힌 탈북여성의 사연을 인터넷을 통해 듣고 그녀를 구출할 수 있도록 300만 원을 내놓은 40대 회사원의 따뜻한 이야기(1월 7일자)로 시작했다. 동아일보 기자는 어렵사리 중소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인 주인공을 찾았지만 그는 끝내 ‘얼굴 없는 천사’로 남았다.

○ 사건에 울고 웃고

1월 8일자 창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상정과 관련한 국회 폭력 사태에서 ‘국회 활극’의 주인공이었던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를 바라보는 경남 사천군 지역구민들의 엇갈린 민심을 전달했다. 폭력국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 이 사건은 사회 원로인사들이 쇠톱과 망치를 들고 난투극을 재연하며 ‘말을 통해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는 국회’가 될 것을 촉구하는 등(9월 25일자) 올해 내내 회자됐다.

유난히 사건이 많았던 2009년은 흉악 범죄자들의 인면수심(人面獸心)에 경악하고 피해자 가족들의 사연에 눈시울을 젖게 한 해였다. 연쇄살인범 강호순 피해가족들의 사연(2월 2일자), 한자리에 마련된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49재 위폐(3월 11일자), 광주 초등생 공기총 살해범 목격자의 이야기(6월 16일자), 임진강 야영객 사망·실종사고 가족들의 사연(9월 9일자) 등이 현장 기자의 눈을 통해 그대로 전달됐다.

안타까운 사연도 많았다. 숨진 지 열흘가량 지나 발견됐던 23년차 고시생의 쓸쓸한 죽음(1월 10일자),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독도경비대 고 이상기 경사 가족(1월 29일자), 4세 때 성폭력을 당한 뒤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폭식증을 겪고 있는 A 양(4월 18일자), 현충일에 태극기를 단단하게 매려다 11층에서 추락한 9세 하늘이의 죽음(6월 8일자), 비정규직법 시행 유예 논의가 국회 파행으로 무산되면서 해고된 대학 시간강사들의 이야기(8월 18일자) 등에 대해 독자들은 안타까워했다.

1989억 원을 횡령한 뒤 잠적한 동아건설 박상두 부장을 찾기 위해 그의 집 앞을 지키던 동아건설 직원들 이야기(7월 24일자)에서는 대형 사건 사고의 뒤에서 한숨짓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권모 부장 등 동아건설 직원들은 한 달가량 ‘탐정’ 일에 매달린 뒤 현장으로 돌아갔다. 권 부장은 “목포∼해남 간 가스 주배관 공사를 맡는 등 본업으로 돌아가 설계도를 들고 열심히 뛰고 있다”며 “올 한 해 회사에 안 좋은 일도 많았지만 1조2000억 원을 수주하는 등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며 웃었다.

○ 형제마저 갈라놓은 사회 갈등

‘형제’마저 갈라놨던 극렬한 사회 갈등도 창에 투영됐다. 77일 만에 마무리됐던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파업은 공장 안과 밖으로 형제를 갈라놨고, 사측 직원들이 파업을 지지하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에게 격렬히 항의하는 모습도 담겼다(8월 6일자). ‘부촌’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주민 토론회에서는 대기업 임원, 변호사, 의사, 전직 국가정보원 비서실장 등 사회지도층이 이해관계를 놓고 이전투구하는 세태를 보여줬다(6월 4일자). 타워크레인 노조가 집회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매일 밤 퇴근길에 경찰서에 들러 집회 신고서를 접수시키는 건설사 직원(3월 7일자), H개발 외식사업본부의 실장과 노조원의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동문회관 앞 집회 신고 선점 경쟁(12월 25일자) 등도 한솥밥을 먹던 회사 식구가 이해관계를 놓고 갈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기사가 나간 뒤 파워크레인 노조에서는 기자를 찾아와 “사실관계는 인정하지만 노조의 입장도 이해해 달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이산가족의 아픔도 여전히 한국 사회의 창에 서리처럼 어려 있었다.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강제 징용된 후 끝내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세상을 뜬 아버지를 추억하며 친척 오빠와 처음 만난 60대 탈북 여성의 사연(4월 30일자)을 비롯해 2000년 첫 남북이산가족 상봉 때 가족의 이름을 쓴 종이판을 목에 걸고 애타게 가족을 찾던 김상일 씨(78)가 올해 상봉 기회를 얻게 된 소식(9월 19일)도 전했다. 김 씨는 “평생소원을 풀어 속죄한 것처럼 한없이 기뻤다”며 “가족의 곁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기쁘고 마음이 편해졌다. 2009년도는 내게 최고로 행복한 해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 창 통해 온정 전달

본보 기사에 대한 사회 각계각층의 온정도 창을 통해 전달됐다. 자살을 ‘살자’로 바꿨던 서울동부지법 이우재 부장판사의 사연이 본보에 소개된 뒤 이어진 독자들의 ‘공감대’도 창에 담겼고(5월 7일자), 생면부지의 6명에게 장기와 각막을 이식한 고 장만기 씨의 부인 곽선영 씨(가명)에 대한 기사를 읽고 장기를 기증받은 수혜자들이 감사의 뜻을 알려왔다(7월 3일자).

대안학교인 서울 양천구 한민족학교에서 같은 탈북자인 최옥 교장이 탈북 청소년들을 돌보고 있다는 기사가 나간 뒤 독자들의 성원이 쇄도한 가운데 청와대가 학생들을 청와대로 초청하기도 했고,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 설립 등 잇따라 관련 지원대책이 나왔다(6월 15일자). 최 교장은 “동아일보 보도 이후에 여러 후원자의 도움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며 “경제난에 모두 어려운 한 해였지만 따뜻한 이웃이 있어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됐다”고 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窓(창)


1982년 7월부터 동아일보 사회면에 실린 기자들의 현장기사입니다. 창은 전두환 정권의 강권통치가 한창이던 1980년대 갖가지 사회 부조리와 부정을 완곡하게 담아 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언론의 자유와 민주화에 앞장서왔습니다. 특히 1982년 7월부터 1987년 1월까지 게재된 창은 책으로 편찬돼 당시 지식인 사이에서 널리 읽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