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포용-개방 확대 선진국 초석 다져야
약자에게 덕 베푸는 ‘山中君子’ 배웠으면
일러스트 김수진 기자
60년 만에 다시 찾아온 백호의 해에 대한민국이 웅비하기 위해 우리가 세워야 할 비전은 무엇인가. 자유롭고 풍요롭고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선진민주주의 국가를 만드는 일이다. 그러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관용(톨레랑스), 포용, 그리고 개방성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인이 1000년 동안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구축한 것은 종교적 관용, 약자와 패자를 끌어안는 포용성, 출신지를 가리지 않고 시민권을 부여하는 인종적 개방성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아우르고 모든 인종의 차이를 녹이는 용광로(melting pot)라고 불렸던 개방성 관용 포용력이 20세기를 ‘미국의 세기’로 만들었다. 21세기에 들어서서 팍스 아메리카나가 흔들리는 것은 9·11테러 이후 미국의 관용과 포용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다시 웅비하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 비전은 관용이 넘치는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한국은 종교 활동이 가장 왕성한 나라이면서도 기독교 불교 유교 등 다양한 종교가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나라이다. 이러한 종교적 다원주의, 종교적 공존은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국가 브랜드이다. 그런데 한국의 종교 내부에 그리고 종교 간에 근본주의가 자라나고 있어 종교적 다원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에 관용이 줄어들고 있다. 정보기술(IT) 혁명시대에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는 서로 불화하고 노동자와 사용자, 지역과 이웃지역, 남과 북은 서로를 관용하지 않는다. 관용이 없는 것은 우리 내부에서 자라나는 근본주의 순응주의 가산주의(patrimonialism) 때문이다. 우리는 남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그에 기반을 두고 화해와 화합을 다지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 부족하고, 하나의 원리만을 가지고 세상의 문제를 뚫으려 했지 다양한 원리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원주의가 결핍되어 있다.
두 번째 비전은 넓고 강한 포용력이 있는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포용은 강자와 승자의 몫이다. 승자만이 포용할 수 있다. 로마인처럼 승리하고 나서 패자에게 포용을 보여야 진정한 포용성이 빛난다. 민주주의는 승자가 항상 패자가 될 수 있는 정치체제이고 따라서 정치적 승자가 항상 패자가 될 때를 대비해서 겸손하게 행동하고, 패자를 배려하고 포용하기 때문에 민주적 평화와 번영이 유지된다.
셋째, 외부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좀 더 열린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여전히 닫힌 민족주의이고, 우리의 기업은 전 세계에 자신의 깃발을 꽂으려고만 하지 노동 환경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에 관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탈영토적인 세계화시대에 우리는 우리와 다른 정체성을 인정해야 하고 관용해야 하며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밖으로 진출하여 나라 바깥에서 부를 창출하여 나라 안을 살찌우는 천년의 공화국 베네치아와 같은 ‘투자국가’를 실현할 수 있고 5대양 6대주에서 한국의 기업인 노동자 학자 학생이 세계인과 교역 교류 대화하며 동행할 수 있다.
관용 포용 개방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주는 사회적 자본이다. 이 사회적 자본은 사회적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축적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의 종교 정치 기업 시민사회는 자신의 내부에 바벨탑을 쌓아간다. 바벨탑의 신화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국가 전체가 붕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한국인이 위대한 소통자가 되어 말하기보다 듣고, 자신보다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고, 자신을 투명하게 하여 상대방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