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의 하나뿐인 숲을 살려라”… 한국 녹화 경험 심어
삶의 터전인 참나무숲이…
방목 가축, 묘목도 먹어치워 70년새 숲 절반이나 감소
무상 지원보다 자생력 키워
위성-GIS로 과학적 분석하고 목축 대체할 한국형 작물 실험
아인스노시 입구의 샛강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참나무들. 참나무 군락이 줄어들면서 토양이 침식되고, 이로 인해 참나무들이 훼손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뿌리가 드러난 참나무들이 언제라도 강물로 떨어질 듯 위태위태한 모습이다.
튀니스를 떠나 자동차로 약 2시간 만에 도착한 아인스노시. 띄엄띄엄 나타나는 마을이 사라질 무렵에 나타난 참나무숲은 거대한 바다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 속은 골병이 들어 있었다. 샛강 주변에선 토양 침식 탓인지 뿌리의 절반이 허공에 매달려 곧 강물 속으로 떨어질 것 같은 참나무 수십 그루가 눈에 띄었다. 마을 어귀에 있는 수령 200년의 거대한 참나무도 줄기의 3분의 2가 사라졌고 벌레로 뒤덮여 고사(枯死) 직전이다.
이곳 참나무숲은 튀니지 전체 국토의 6%를 차지하는 유일한 산림지대다. 밀이 생산되는 중부지역은 로마시대의 곡창기지로 유명하고, 영화 스타워즈와 잉글리시 페이션트 촬영지였던 남부는 사막지역이다. 북서부 지역의 참나무는 와인 마개로 쓰이는 코르크의 재료. 참나무숲이 사라지면 튀니지의 유일한 산림지대가 소실될 뿐 아니라 주요한 수출상품이 없어진다.
이 지역 자치단체장인 후신 오트마니 씨는 “이곳 속담에 ‘숲은 사람들의 보호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나무를 신성시한다”며 “하지만 가축을 길러 파는 돈이 수입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주민들로서는 생존을 위해 숲을 해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INRGREF 압델하미드 칼디 박사(오른쪽)와 서미영 KOICA 튀니지사무소장이 아인스노시에 설치된 기후변화 측정장비를 점검한 뒤 KOICA사업을 상징하는 현판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인스노시=김영식 기자
KOICA는 2007년부터 250만 달러를 투입해 INRGREF와 함께 종합적인 산림 쇠퇴 원인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구대상 지역은 500가구 2600여 명이 거주하는 아인스노시 지역의 숲 3000ha. 버섯 등 각종 작물의 시험재배로 주민들이 다른 소득원을 찾게 함으로써 참나무숲을 보전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한국형 농가’ 실험가구로 지정돼 올해부터 상추와 고추 등을 재배할 예정인 무함마드 압다지즈 씨(52)는 “농업이나 다른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주민들이 왜 숲을 해치겠느냐”며 “다른 선택만 있다면 숲의 보전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오트마니 씨는 “7, 8월에 코르크 껍질을 벗기는 작업에 동원돼 일당을 받고 나머지 기간에는 목축업을 하는 주민들은 숲이 사라지면 삶의 터전이 사라진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며 “다른 소득증대사업이 이뤄지면 숲의 쇠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우수영 서울시립대 교수는 “주민들이 숲에 낸 길이 산림 쇠퇴에 90%의 영향을 미치는 사실을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한 작업들을 통해 최초로 과학적으로 설명했다”며 “연구사업은 현지인의 자생력을 키우는 선진국형 원조사업으로 한국의 대외원조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칼디 박사는 “과거에도 프랑스 스페인 등 주변 국가의 지원으로 참나무숲 쇠퇴 원인을 연구했지만 아리랑 위성까지 동원해 입체적으로 분석한 것은 KOICA가 처음”이라며 “참나무숲 복원을 위한 진정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인스노시·튀니스(튀니지)=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 “KOICA 프로젝트, 주민 100만명 삶과 직결된 사업” ▼
■ 레제브 임업硏 소장
―다른 나라와의 공동연구와는 차별화되는 KOICA 사업의 특징은 어떤 것인가.
“한국인들이 매우 친절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KOICA와 처음으로 협력하는데도 양자 간에 많은 정보와 기술을 교환하고 있어 참나무숲 복원 및 지속개발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본다.”
―한국 참나무는 코르크로 생산되지 않는데 튀니지 코르크 참나무숲 복원에 도움이 되나.
“한국 지방의 숲을 방문하면서 한국이 튀니지 산림 복원에 도움을 주면 아주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식목일도 인상적이었다. 튀니지에선 숲이 국가 소유다. 하지만 숲 속에 사는 주민들로서는 나무를 자르고 숲을 훼손하는 것이 삶의 마지막 수단이다. 정부도 이를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치하고 있다.”
―참나무 껍질을 벗기는 시기는….
“7, 8월 두 달간이다. 130cm 정도 높이로 껍질을 벗겨내고 나면 약 12년 뒤에 다시 껍질을 벗길 수 있다. 이것도 쇠퇴의 증거다. 다른 곳에선 9년 또는 10년에 한 번씩 껍질을 벗기기도 한다. 보통 수령 40년 이상의 참나무부터 껍질을 벗긴다.”
―현재 KOICA의 연구 성과는 얼마나 진척됐나.
“한국 과학자들과 △생태적 특성 변화 △지리정보시스템(GIS) 활용 분석 △사회·경제적 측면 △토양 △생태계 등 다섯 가지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사회·경제적 측면은 연구가 완료됐고 후속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 “한국은 다르더라” 유럽 못지않은 기술로, 유럽보다 더 열심 ▼
■ 튀니지 측에서 본 한국
KOICA의 코르크 참나무숲 쇠퇴 분석 연구사업의 튀니지 측 사업 책임자인 INRGREF의 압델하미드 칼디 박사는 “참나무 쇠퇴분석 연구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돈을 투자했던 프랑스나 유럽연합(EU)과 달리 KOICA 프로젝트에는 뭔가 다른 특별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국가들은 문제를 발견하는 것에 그쳤다”며 “그러나 한국은 독창적이고 종합적인 방법으로 실질적인 문제 해결방법을 함께 고민한다”고 말했다.
유럽국가 연구자들과 수많은 공동연구를 했던 그는 튀니지 사람들을 낮춰 보는 듯한 유럽인들의 시선을 여전히 잊지 못했다. 아무래도 프랑스의 튀니지 지배(1883∼1956년)에 앙금이 남아 있기 때문인 듯했다. 한편으로는 포에니 전쟁에서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로마군을 거침없이 물리쳤던 카르타고 명장 한니발의 후예라는 자존심과도 연결되는 문제였다. 그런 만큼 현지에서 격의 없이 분야별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KOICA의 사업은 각별하다.
다른 선진국 위성에 뒤지지 않는 한국 아리랑 위성의 역할도 컸다. 우수영 서울시립대 교수는 “장당 150만 원에 이르는 60cm급 고해상도 위성사진 분석으로 참나무숲의 활력도를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근면성도 인상적인 대목이다. KOICA 프로젝트를 통해 2008년 4월에 한국을 방문한 후신 오트마니 씨는 “한국인의 근면한 정신을 아인스노시 주민들에게 전파해 소득증대와 숲의 보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