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작년 말 국회에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ICL) 도입을 놓고 대립하다 이달 말 상임위에서 관련법을 처리하되 대학등록금 상한제를 병행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제 “등록금 과다인상 대학의 경우 학자금 대출 비율을 줄이고, 나머지 재정지원도 등록금 인상 비율을 중요 평가항목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등록금을 올리면 돈줄을 죄겠다는 압력이다. 특히 등록금을 올린 대학엔 ICL 배정을 줄이겠다는 경고다.
등록금 인상 억제는 자녀의 학비 마련을 걱정하는 학부모들에겐 반가운 소식일 수 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돈 걱정하지 않고 대학 공부를 하도록 한다는 정책 취지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대학에 등록금을 올리지 말라고 강제하는 것은 반(反)시장적 규제인 가격인상 금지처럼 부작용과 후유증이 더 클 우려가 있다.
2008년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존 후드 영국 옥스퍼드대 총장은 대학이 직면한 과제로 글로벌 경쟁의 심화, 교수연구와 학생교육을 지원할 기금 확보를 꼽았다.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대학으로 키우려면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교육은 돈이다’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정부의 옥죄기로 대학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학생들에게 질 높은 교육을 할 수 없다면 그만큼 미래세대에 피해가 돌아간다.
ICL도 대출받은 학자금은 떼어먹어도 되는 돈이라는 도덕적 해이를 일으키지 않도록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 정부가 대학생들에게 일단 빚을 지게 만든 뒤, 갚기 싫으면 세금을 안 내는 지하경제에 취업하거나 아예 취업하지 말라고 ‘왜곡된 인센티브’를 줄 수도 있다. 현재 84%나 되는 대학진학률을 더 높여 부실대학과 백수 대졸자를 양산할 수도 있다.
‘등록금 포퓰리즘’ 정책이 국가 장래를 위한 지식산업을 위축시킬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