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1일 오전 10시경 대전지법 230호 법정에 불경 구절이 울려 퍼졌다. ‘법희와 선열을 음식 삼아 다시 다른 생각이 전혀 없으며, 여인은 원래부터 있지 않으니 한 가지 악한 길도 없다(法喜禪悅食 更無餘食想 無有諸女人 亦無諸惡道).’
이 구절을 인용한 주인공은 대전지법 형사항소3부 김재환 부장판사. 피고인석에는 말사 주지 임명과 관련해 수천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충남지역 모 사찰 주지였던 오모 씨와 뇌물을 준 함모, 김모 씨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김 판사는 ‘법희를 아내로 삼고 자비를 딸로 삼고 성실을 아들로 삼았다’는 유마힐소설경 불도품 구절과 ‘산에 사니 청빈하지 않을 일이 없어 물욕은 다 없어지고…’라는 다산 정약용의 말을 인용하며 “피고인들은 법희식과 선열식이 아닌 황금식과 뇌물식을 추구하며 스스로 종교인의 권위를 훼손했다”고 일갈했다. 또 “피고인들이 이제 와서 반성을 되뇌고 있지만 금품수수 경위, 수수 금액 등 정황을 비춰 볼 때 당초 저지른 죄책이나 비난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할 수 없다”며 오 씨에게는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오 씨는 2008년 2월 말사 주지 임명 청탁과 함께 함 씨, 김 씨에게서 각각 5000만 원과 3000만 원을 받은 혐의(배임증재 등)로 기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