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가 신성장 엔진… 태양 - 땅 - 바람 빌려쓰는 ‘꿈의 도시’태양광 - 지열에 빗물까지 활용… 풍력터빈 48개‘NO카본’이 경쟁력… 주거단지 관광객 2만여명불황에 쇠락했던 공장도시 ‘미래형도시’ 탈바꿈
지금은 정보통신기술과 바이오산업 도시로 탈바꿈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조용하고 깔끔한 스웨덴의 전형적인 도시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이야기할 때 항상 ‘지속 가능한(Sustainable)’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해안가 웨스턴하버와 이곳의 주거시범단지 ‘부(Bo)’ 덕분이다.
‘부’는 살다(live)에 해당하는 스웨덴 단어. 2001년부터 이곳에 들어선 아파트 수백채의 지붕들은 한겨울에도 푸르거나 반짝인다. 빗물을 빨아들여 하수의 잦은 범람을 막고 주택 냉난방 효율까지 높여주는 잔디 지붕과 태양광 집열판 때문이다. 집열판은 뜨고 지는 해를 따라 움직인다. 위층으로 갈수록 가분수 형태인 아파트 테라스 구조도 이색적이다. 햇빛을 최대한 많이 받기 위해 아래층보다 넓게 튀어나와 있기 때문이다.
말뫼의 상징 ‘부’가 들어선 웨스턴하버는 100년 전에는 지도에 없던 땅이었다. 1987년 바다를 매립했다. 100여 년 전인 1870년대 이곳에 터를 잡은 세계적인 조선 기업 코쿰스는 한창 때 길이 200m가 넘는 유조선을 만들었고 배를 만드는 독과 크레인에서 6000여 명이 일을 했다. 스웨덴을 대표하던 조선업의 본산이 바로 말뫼였다.
하지만 1986년 조선소가 극심한 불황으로 문을 닫으면서 ‘사람들이 떠나는 도시’가 됐다. 유럽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 사브가 잠시 공장을 짓고 자동차를 생산했지만 이내 문을 닫았다. 결국 시(市)와 시민들이 나섰다. 조선소 터와 공장 건물들을 사들여 기업들의 자발적인 협력과 참여를 이끌어낸 말뫼 시는 2001년 유럽주택박람회를 계기로 버려진 공장지대에서 정보기술(IT)과 지식산업을 기반으로 하되 미래지향적인 콘셉트를 넣어 ‘탄소 제로’ 도시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말뫼가 주력한 것은 우선 태양에너지. 건물 꼭대기와 벽에 집열판들을 붙여 태양열을 모은다. 다음은 풍력. 말뫼 서쪽 해안 10km 지점에 릴그룬드 풍력발전단지를 세웠다. 릴그룬드에는 115m 높이 풍력터빈 48개가 매년 0.33TWh(테라와트·1테라와트는 1조 와트)의 전력을 생산한다. 바다와 지하수를 품은 땅속 지열도 이용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에너지로 운영되는 ‘부’는 100% 에너지 자립을 실현했다.
덕분에 말뫼는 최근 25년간 크게 변했다. 1985년 연간 2000t이었던 말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05년 1000t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주력산업이 조선업에서 IT 등 지식기반 산업으로 바뀌면서 산업부문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1980년에 비해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사람들도 다시 모여들어 1985년 23만 명이던 인구는 28만6353명으로 늘었다. 말뫼 중앙역 부근에 있는 딜로이트, KPMG, PWC 등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와 회계법인 간판들은 말뫼 부활의 상징이다.
말뫼 자체가 관광 상품이 됐다. ‘부’ 단지를 보기 위해 2001년 이후 2만 명의 외국인이 다녀갔다. 지난해 전철로 20분 거리에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릴 때 ‘말뫼를 보고 싶다’는 각국 대표들의 성화에 ‘말뫼 투어’ 자체를 관광 상품으로 내놓았을 정도다. 시청 친환경전략팀 다니엘 스코그 씨는 “탄소 제로를 향한 시도 자체가 새로운 성장동력이자 경쟁력(competition power)이 된 셈”이라고 소개했다.
말뫼=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 54층 건물 ‘터닝토르소’
‘말뫼의 눈물’ 씻고 ‘에코 아파트’ 새 랜드마크로
‘옛날 말뫼를 상징하던 코쿰스 조선소 크레인은 지금은 한국(South Korea)에 세워져 있습니다. 대신 터닝토르소가 조선업 이후(post-industrial) 말뫼를 상징하는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웨스턴하버의 24가지 탄소제로 사회기반시설을 소개한 안내책자 4번 항목에는 위와 같은 문구가 있다. 말뫼의 조선업 불황과 함께 흉물이 된 코쿰스(Kockums)사가 제작한 1600t 급 골리앗 크레인은 2002년 현대중공업이 해체·운반·조립 비용을 대는 조건으로 단돈 1달러에 팔렸다. 당시 스웨덴 언론들은 한때 자신들을 먹여 살렸으나 천덕꾸러기로 변해버린 골리앗 크레인을 이국땅으로 옮기면서 ‘말뫼의 눈물’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비통해했다.
하지만 말뫼는 터닝토르소를 세워 다시 스카이라인을 채웠다.
‘터닝토르소(Turning torso)’는 고층 아파트 건물. 모스크바의 트라이엄프 팰리스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높다. 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인체의 비튼 상반신을 본떠 디자인했다. 190m 높이에 ‘토르소’라는 이름처럼 1층에서 꼭대기 54층까지 시계방향으로 정확하게 90도가 비틀어져 있다. 2001년 짓기 시작해 2005년 8월에 완공됐다.
높이와 디자인만큼 두드러진 것은 탄소배출량 감소와 뛰어난 에너지 효율. 1km 거리에 있는 풍력터빈으로 전기와 태양열, 지열을 생산해 냉난방, 전력을 해결한다. 아파트 내 147가구에 설치된 분쇄기를 통해 나온 음식물쓰레기들은 자동차 연료인 바이오 가스로 재활용된다. 아파트 주민들은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이 소비하는 냉난방과 전력, 물 사용량을 언제나 확인할 수 있다. 이 빌딩을 관리하는 HBS 얀 안데르손 씨는 “복도에 설치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은 사람 움직임이 30초간 감지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꺼져 전력 소모를 줄인다”고 설명했다.
■ 현지 주택전문가 조언
“건축자재 따라서 에너지 효율 달라져…알루미늄 추천할 만”
지난해 12월 10일 스웨덴 말뫼 시 ‘지속가능한 투어(sustainable tour)’ 도중 만난 주택개발 프로젝트 전문가 리카르드 셰크비스트 씨(사진)의 말은 ‘탄소제로’ 하면 흔히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만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깨게 했다. 웨스턴하버 초입에 있는 세계무역센터협회(WTC) 말뫼 사무소에서 만난 그는 건물의 에너지 고효율 소재와 설비를 자세히 설명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사무실 컴퓨터 키보드를 직접 들어올리고 의자 등 집기들을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것들을 만들 때 이산화탄소는 이미 발생한 것이다. 버리는 순간 또다시 이산화탄소 배출이 불가피하다”며 “결국 탄소제로에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 최선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건설 자재와 시스템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WTC 건물 역시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각종 실험적인 인프라를 도입해 지은 말뫼 명물 중 하나. 처음엔 돈이 많이 들었지만 WTC 건물에 주로 쓰인 알루미늄 등의 자재는 에너지 효율이 높아서 결과적으로 환경친화적이 되었다. 알루미늄은 100∼200년을 아무런 유지 보수 비용 없이 사용할 수 있고 100% 재활용이 가능하다.
특히 냉난방 에너지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두드러진다. 이 건물 창문은 외벽에서 60cm 정도 돌출돼 있는데 이는 블라인드를 매단 공간이다. 블라인드가 수시로 햇빛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며 해의 움직임을 따라 각도를 바꾸기 때문이다. 건물 내부 온도가 20도 이상 올라가면 바깥의 공기를 건물 내부로 순환시켜 냉방을 하도록 건물이 지어졌다.
셰크비스트 씨는 “에너지효율과 탄소제로 인프라가 강조되면서 금융위기와 함께 지난해 초까지 주춤하던 건설경기까지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 도움 주신 분들 ▼
▽ 박현정 주한 스웨덴 대사관 수석 공보관
▽ 김장용 스웨덴 왕립공과대 박사
▽ 박민아 스웨덴 스톡홀름대 법대 학생
▽ 신승호 삼성물산 친환경에너지연구소 에너지효율 파트장
▽ 신정수 KOTRA 홍보팀 과장
▽ 지홍민 캐논코리아컨슈머이미징㈜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