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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전 高大상과대 ‘홍일점 1호’모교에 시가 5억 상당 빌딩 내놔

입력 | 2010-01-06 03:00:00

전윤자 씨 ‘아름다운 기부’




“1955년 제가 고려대를 졸업할 때 여자 동기라고는 학교 전체를 통틀어 경제학과와 법학과에 있는 2명이 전부였습니다. 상과대에선 제가 유일한 여자 졸업생이었고요. 지금은 여학생이 더 많은 학과도 있다니 격세지감입니다.”

5일 모교인 고려대에 발전기금으로 부산 중구 동광동에 있는 5층짜리 빌딩(시가 5억 원 상당)을 기부한 전윤자 씨(78·사진)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고려대 상과대에 입학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60년 전 ‘홍일점 신입생’ 시절의 추억으로 빠져들었다.

여학생이 드물어 캠퍼스를 거닐기만 해도 지나가던 교수나 학생들이 뒤돌아보던 당시 남학생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상과대에 입학한 전 씨는 동기들의 짓궂은 장난 때문에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늘 제가 앉던 강의실 의자를 남학생들이 부러뜨려 의자에 앉다가 넘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지도교수님을 찾아 여대로 학교를 옮기는 문제를 상담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교수님이 저 때문에 남학생들에게 ‘남자의 기사도’에 대해 특강을 해주셨겠어요.” 학교에 등교하는 복장은 무조건 치마 차림이었다. 한복 차림으로 강의를 듣는 것이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바지나 짧은 치마는 꿈도 꾸지 못했다.

1955년 졸업을 하고 한국은행에 취직한 전 씨는 한국은행과 외환은행에서 여성 행원으로 25년 동안 근무하면서 각종 기록을 만들었다. 한국은행에서는 고려대 상과대 출신 첫 입사자였고 외환은행에서 지점장 대리와 과장으로 승진했을 때에도 전 씨의 직함 앞에는 ‘여성 1호’라는 수식어가 달렸다. 1980년에 퇴직한 전 씨는 미혼모나 미혼여성 등을 위한 여성전용 금융기관인 ‘숙녀신용협동조합’(현 동부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해 이사장으로 있다가 3년 전 은퇴했다.

사실 전 씨의 모교 사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년에는 남편 허병운 씨(전 동황물산㈜ 사장)의 사망으로 상속받은 유산에서 5000만 원을 고려대에 기부했다. 기부금은 상과대의 후신인 경영대의 외국인 학생 기숙사 건립기금으로 사용됐다.

전 씨는 “후배 여성 경영학도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든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해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데 장학금이 쓰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려대는 5일 전 씨와 전 씨 가족, 이기수 총장, 장하성 경영대 학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발전기금 전달식을 가졌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