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융합 시대를 맞아 대학에서도 ‘융합형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융합형 인재가 갖추어야 할 능력이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아직도 명백한 합의가 없는 것 같다. ‘여러 분야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창의적 인재’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이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 얼마 전 서울대 융합기술 세미나에서 어느 대학원생이 퉁명스럽게 “하나의 전공도 제대로 배우기 어려운데 어떻게 여러 분야를 이해하라는 말이냐. 우리는 슈퍼맨이 아니다”라고 불평하는 것을 들었다.
학과 간 장벽 높아 대화 안 돼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요체는 ‘소통의 기술’을 가르치는 데 있다. 학제 간 연구가 활발한 선진국의 대학에서도 교수들은 자기 전공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급이지만 모든 분야에 능통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최고급 전문가들이 같이 모여 토론하면서 중요한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공동으로 찾아가는 연구풍토가 되어 있을 뿐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스마트폰을 만들거나 최고의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영화를 제작하는 것도 각 분야의 전문가가 토론하면서 공동 작업을 해야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21세기 융합의 시대를 이끌어 갈 인재는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공통의 목표를 위해 토론하고 협동할 수 있는 ‘소통의 기술’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즉 ‘소통의 기술’이 ‘융합 기술’의 필수과목인 셈이다.
물론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소통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요즘은 어느 학문 분야든 축적된 지식의 양이 상당하여 분야마다 전문용어가 수없이 많고, 그래서 다른 분야의 세미나에 들어가 보면 마치 외국에 온 것처럼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분야마다 오랫동안 내려오는 전통적인 믿음이나 독특한 문화가 있는데, 외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결국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다른 분야 전문가와의 진정한 대화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이처럼 소통에 능한 융합형 인재를 키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애석하게도 그런 것 같지 않다. 요즘 대학마다 학문의 융합을 강조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학과 간의 장벽이 높고 다른 분야 사람들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 게다가 학생들을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와 이과로 나누는 바람에 문과 전공 학생들은 최소한의 자연과학 지식도 갖추지 못하고 이과 전공 학생들은 인문학적 지식이 부족한 상태로 사회에 나가는 경우가 많다. 사회의 분위기 또한 자기 분야의 이익과 자기 사람들만 챙기려는 분야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조금만 생각이 달라도 적(敵)으로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판을 치고 있다. 여(與)와 야(野)가 간단한 대화조차 못하는 우리 정치판의 풍토가 아마도 대표적일 것이다.
핵심은 포용과 관용이다
오세정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물리학 sjo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