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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오세정]‘융합 시대’를 이끌어 갈 ‘소통의 기술’

입력 | 2010-01-06 03:00:00


21세기에 들어온 지도 벌써 10년이 돼 간다.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21세기가 변혁의 시대, 예측 불가능한 격동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말에 수긍이 간다. 그러나 이처럼 불확실한 시대에도 확실하게 드러나는 몇 가지 메가 트렌드가 있다. 그중의 하나가 21세기는 ‘융합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바로 오늘 우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전화와 컴퓨터는 이미 하나가 되어가고 있고, 국내외에서 화제를 뿌려가며 관객 몰이를 하고 있는 ‘아바타’라는 영화는 어디까지가 배우 연기이고 어디부터가 컴퓨터 그래픽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예술과 기술이 융화되어 있다. 이제 첨단 의료장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의사와 공학도가 공동으로 작업을 해야 하며, 새로운 금융상품을 만드는 데에는 경제학자와 수학자의 협력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융합 시대를 맞아 대학에서도 ‘융합형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융합형 인재가 갖추어야 할 능력이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아직도 명백한 합의가 없는 것 같다. ‘여러 분야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창의적 인재’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이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 얼마 전 서울대 융합기술 세미나에서 어느 대학원생이 퉁명스럽게 “하나의 전공도 제대로 배우기 어려운데 어떻게 여러 분야를 이해하라는 말이냐. 우리는 슈퍼맨이 아니다”라고 불평하는 것을 들었다.

학과 간 장벽 높아 대화 안 돼

사실 분야별 지식이 엄청나게 축적되어 있는 현대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르네상스인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심지어 다빈치 같은 천재도 자연과학 예술 공학 등 여러 분야에 능통했지만 실제로 틀린 지식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평범한 사람을 현대 사회에서 모든 분야에 능통한 인재로 키우려 하다가는 어느 한 분야도 제대로 모르는 수박 겉핥기식 사이비 전문가를 만들거나 늙을 때까지 공부만 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요체는 ‘소통의 기술’을 가르치는 데 있다. 학제 간 연구가 활발한 선진국의 대학에서도 교수들은 자기 전공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급이지만 모든 분야에 능통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최고급 전문가들이 같이 모여 토론하면서 중요한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공동으로 찾아가는 연구풍토가 되어 있을 뿐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스마트폰을 만들거나 최고의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영화를 제작하는 것도 각 분야의 전문가가 토론하면서 공동 작업을 해야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21세기 융합의 시대를 이끌어 갈 인재는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공통의 목표를 위해 토론하고 협동할 수 있는 ‘소통의 기술’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즉 ‘소통의 기술’이 ‘융합 기술’의 필수과목인 셈이다.

물론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소통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요즘은 어느 학문 분야든 축적된 지식의 양이 상당하여 분야마다 전문용어가 수없이 많고, 그래서 다른 분야의 세미나에 들어가 보면 마치 외국에 온 것처럼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분야마다 오랫동안 내려오는 전통적인 믿음이나 독특한 문화가 있는데, 외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결국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다른 분야 전문가와의 진정한 대화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이처럼 소통에 능한 융합형 인재를 키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애석하게도 그런 것 같지 않다. 요즘 대학마다 학문의 융합을 강조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학과 간의 장벽이 높고 다른 분야 사람들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 게다가 학생들을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와 이과로 나누는 바람에 문과 전공 학생들은 최소한의 자연과학 지식도 갖추지 못하고 이과 전공 학생들은 인문학적 지식이 부족한 상태로 사회에 나가는 경우가 많다. 사회의 분위기 또한 자기 분야의 이익과 자기 사람들만 챙기려는 분야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조금만 생각이 달라도 적(敵)으로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판을 치고 있다. 여(與)와 야(野)가 간단한 대화조차 못하는 우리 정치판의 풍토가 아마도 대표적일 것이다.

핵심은 포용과 관용이다

싫든 좋든 21세기에는 융합이라는 메가 트렌드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우리의 후손들을 이러한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융합형 인재로 키우기 위해서는 ‘소통의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남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남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포용의 정신과 남의 사소한 잘못은 용서해주는 관용의 정신이 필수적이다. 2010년 새해 벽두 이 시점에서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포용과 관용의 정신이 아닐까.

오세정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물리학 sjo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