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넘기자 국제의무 외면”
2008년 말 국가부도 위기를 간신히 넘긴 아이슬란드 대통령이 자국 은행 붕괴로 피해를 본 영국과 네덜란드 예금자를 보호하는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올라퓌르 라그나르 그림손 아이슬란드 대통령은 5일 은행을 대신해 피해 국민에게 손실액을 지급한 영국과 네덜란드 정부에 57억 달러(약 6조4952억 원)를 보상하는 내용의 법안에 서명을 거부한 뒤 국민투표에 맡기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성명을 통해 “국민이 법의 타당성에 대해 최종 결정권을 갖는 것은 아이슬란드 헌법의 핵심”이라며 “이제 국민이 권력과 책임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투표시기에 대해 “최대한 빨리 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아이슬란드 의회는 지난해 12월 31일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8년 10월에 붕괴된 라즈방키 은행 인터넷 자회사인 아이스세이브에 돈을 맡겼다가 57억 달러를 잃은 영국과 네덜란드 예금자 32만 명을 보호하는 법안을 찬반 논란 끝에 간신히 통과시켰다. 이후 여론이 크게 악화되면서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이 넘는 6만여 명이 서명한 반대 청원이 그림손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1944년 건국 이후 두 번째다.
아이슬란드의 유럽연합(EU) 가입 가능성을 높여주고 주변국과의 관계강화를 통해 아이슬란드의 경제회복을 도울 것으로 평가됐던 법안이 대통령 서명단계에서 제동이 걸리자 영국과 네덜란드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