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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산책/이명진]보람 가르쳐준 ‘기부천사’ 할아버지의 장학금

입력 | 2010-01-07 03:00:00


지난가을 장학금 문제로 교내 장학과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낯선 할아버지 한 분을 뵙게 됐다. 그분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지속하지 못하는 학생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50만 원을 학교에 내놓고 가셨다. 나중에 전해 들으니 할아버지의 손자는 제대를 1주일 앞두고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나는 할아버지 손자가 우리 학교 학생도 아니었다는 것과 전에도 할아버지께서 이미 수천만 원의 돈을 기부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그야말로 기부 천사였다.

이 일은 내게 신선한 자극이 됐다. 사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가 최우선이라는 생각에 학점과 토익 성적에만 치중하면서 대학생활을 했다. 그 덕분에 매번 다행히도 좋은 성적과 함께 장학금을 받았지만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과 가슴 한구석에 인간관계 형성 부족에 따른 외로움이 자리 잡았다.

할아버지의 사연을 알게 된 이후로 얼마 남지 않은 대학생활을 인간관계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로 대기업에서 지원하는 대학생봉사단의 청소년 미디어 멘터링에 참여했다. 내가 맡은 아이는 편부 가정의 여고생이었는데 처음에 차갑던 아이의 마음도 차차 열리게 됐다. 서로 소통해 가며 느끼는 만족은 높은 성적이나 장학금과는 또 다른 값진 느낌이었다. 이렇게 인간관계의 지평을 넓혀 가기 시작하니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다가왔다. 나와 30년 이상 차이가 나는 학교 수위 아저씨와 일상의 안부를 나누는 소위 ‘절친’이 된 것은 사고전환의 노력 덕이 아닌가 싶다.

매년 화제의 신조어를 선정해 등재하는 옥스퍼드 사전은 지난해의 단어로 온라인상으로 맺어진 친구를 삭제한다는 의미의 ‘언프렌드(Unfriend)’를 선정했다고 한다. 취업만이 대학생의 최대 목표가 되고 그에 따라 인간관계도 점점 단편화되어 가는 현실에서 조금은 씁쓸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앞서 얘기한 할아버지처럼 나눔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분이 주변에 있기에 세상은 아직 살 만하지 않나 싶다. 추운 날씨에 몸도 마음도 움츠러드는 겨울, 취업을 위한 공부도 좋고 문화생활도 좋지만 나보다는 남을 생각하며 행동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이명진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