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日성악가 첫 공연홍난파 - 계정식 등 연주자로 낯선 감동 선사
1923년 10월 독일 유학을 떠나기 전 바이올린 리사이틀을 연 계정식 씨. 동아일보 자료 사진
야나기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가극 ‘미뇽’ 중 ‘그대는 아는가, 저 남쪽 나라를’, 슈베르트의 ‘봄의 신앙’ 등을 불렀다. 이틀 뒤 동아일보는 “옥반에 구실을 굴니는 듯한 소리는 \중의 정신을 새롭게 하얏스며 곡됴에 의지하야 그의 표정하는 것은 배우로도 당하기 어려울만함에는 누구나 감동치 안이치 못하얏다”고 소개했다. 그는 민예연구가이자 미술평론가인 남편 야나기 무네요시와 함께 1920∼40년대 조선민족미술관 설립을 위한 무료 순회공연을 열었다.
한 달여 뒤인 6월 9일에는 1901년 창설한 경성악대가 종로중앙청년회에서 음악회를 열었다.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 이바노비치의 ‘도나우 강의 잔물결’이 레퍼토리였다. 이 악대는 여름철 매주 목요일마다 탑골공원에서 ‘납량연주회’를 개최했다.
서양 연주자들도 경성을 찾았다. 동아일보는 1920년 8월 1일 ‘조선 초유 미국 흑인의 성악회’가 열려 ‘천 여 명의 청중을 (포복)절도케’ 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1923년 2월 12일자에선 “사현금(바이올린)을 잘 타기로 세계에서 유명하다는 ‘플로’ 녀사는 일본감리교회 성가단 주최로 독주회를 개최한다는데…이 훌륭한 예술에 접하고자 하는 이는 입장권을 먼저 준비하는 것이 좃켓다더라”고 전했다.
오늘날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와 저명한 연주자들이 1년에도 여러 차례 내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아울러 정명훈(지휘), 조수미(소프라노), 사라 장(바이올린), 장한나(첼로) 씨 등은 클래식계의 거장으로 불리며 세계무대를 수놓고 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