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열 울주군수(가운데)가 지난해 12월 울산발전연구원이 발굴한 묘를 둘러보고 있다. 울주군은 이 묘가 1000여년 전의 기생 전화앵의 묘로 추정했으나 울산발전연구원은 “전화앵 묘로 판단할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사진 제공 울주군
전화앵은 조선 중종 25년(1531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열박령은 경주 남쪽 30리에 있고, 경주 기녀 전화앵이 묻힌 곳’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또 원로사학자인 성신여대 이현희 명예교수는 1988년 ‘창기와 명기의 애환’이란 저서에서 “국가의 비운을 맛본 전화앵은 경주 남쪽 열박령을 좋아했고 고려 무인들이 함께 송도로 갈 것을 권했지만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 기록을 근거로 한 지역방송이 1996년 7월 “울주군 두서면 활천리 산57의 묘가 전화앵이 묻힌 곳”이라고 주장한 뒤 이 무연고 묘는 전화앵의 묘로 굳어졌다. 울산학춤보존회는 2002년부터 매년 ‘전화앵제’를 여는 등 추모사업을 벌여왔다.
울주군과 울주문화원도 지난해부터 전화앵 추모사업을 주관하면서 전화앵 묘 성역화를 위해 지난해 11월 울산발전연구원에 발굴을 의뢰했다. 울산발전연구원은 “이 묘지는 7세기 말 횡혈식 석실분으로 전화앵 생존 연대와는 200∼300년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누구 묘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결론.
정재락 기자 ra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