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 임금(재위 1567∼1608)은 그릇이 간장종지만 했나 보다. 그는 임진왜란 피란통에 먹었던 음식까지 시시콜콜 기억하고 있었다. 나라가 바람 앞 등불 신세였던 그 시절. 임금 수라상이라고 별 수 없었다. 잡곡밥에 산나물 반찬. 그때 누군가 어렵게 생선을 구해 올렸다. 꿀맛이었다. 이름이 ‘목어(木魚)’라고 했다. 선조는 당장 그 이름을 ‘은어(銀魚)’로 바꾸라고 명했다.
선조는 대궐로 돌아오자 그 생선부터 찾았다. 옛날 맛이 날 리 없었다. 이름을 처음처럼 ‘도로 목어’로 하라며 밥상을 물렸다. 목어가 ‘도로목어→도로목→도루묵’을 거쳐 ‘말짱 도루묵’이 된 사연이다. 선조 덕택에 ‘양반이름’을 받은 나무도 있다. 상수리나무가 그것이다. 피란 중 먹을 게 없자, 산중에 흔한 도토리묵을 쒀서 올린 덕분이다. 열매가 ‘임금수라상에까지 오른 나무’라는 뜻에서 ‘상수리(라)나무’가 됐다.
그렇다. 도루묵은 볼품이 없다. 몸에 그 흔한 비늘조차 없다. 몸통도 20∼26cm 길이로 자그마하다. 무협지 강호논리로 하자면 개방파에 속한다. 개방파는 거지들로 이루어진 꾀죄죄한 문파. 소림, 무당, 곤륜파와 같은 명문이 아니다. 어중이떠중이 각설이타령이나 부르며 강호를 떠돈다. 뭐 어떤가. 그들은 누가 뭐래든 신나고 즐겁게 살았다. 거창한 명분이나 격식 따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참새가 대붕의 뜻을 모르면 어떤가. 빨랫줄에 앉아 수다 떨며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다.
요즘 도루묵은 강원 고성 속초 양양 강릉 앞바다에 흔전만전 넘쳐난다. 여름 깊은 바다에서 살던 것들이 알을 낳으려고 연안으로 몰려든 탓이다. 어민들이 그물을 던지면 ‘반은 도루묵, 반은 까나리’가 걸려 올라온다. 이곳 사람들은 까나리를 양미리라고 부르지만, 까나리와 양미리는 엄연히 다르다. 양미리는 큰가시고기목 양미리과, 까나리는 농어목 까나리과에 속한다. 서해에선 봄에 어린 까나리(10∼15cm)를 잡아 젓갈을 담근다.
겨울동해 까나리는 20cm가 넘는다. 양미리는 연안에선 거의 잡히지 않는다. 까나리도 도루묵과 비슷한 서민 바다고기. 한때 겨울강릉 속초에선 ‘개나 고양이도 도루묵이나 까나리(양미리)를 입에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하도 많이 잡혀 ‘삽으로 떠서 나르던 생선’이다. 짭짤하게 제값 쳐서 받는 요즘은 ‘개천서 용 난 거’나 같다.
도루묵은 못생겼어도 맛있다. 겨울도루묵은 ‘살 절반, 알 절반’이다. 알이 한 마리에 무려 1000∼1500개나 들어 있다. 배가 터질 듯 빵빵하다. ‘알갖이 도루묵’이다. 내장은 머리 쪽에 손톱만큼 붙어 있다. 도루묵 알은 톡톡 터진다. 석류알 같다. 오도독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이빨 틈새 곳곳에 숨어 숨바꼭질한다. 알 겉에는 미끄덩거리는 점액이 묻어난다. 점액에선 가느다란 실이 나온다. 거미줄 같은 것이 혀와 잇몸 이빨을 엉기고 감아 도는 맛이 괜찮다. 구운 도루묵 껍질을 죽 찢으면 구슬처럼 알이 차르르 쏟아져 나온다. 양미리 알은 점액이 없어 부드럽다.
1970, 80년대 강원도에서 군대생활을 해 본 사람은 안다. 한 끼 건너 나오던 도루묵국. 양념이 변변할 리 없다. 밍밍하고 덤덤한 국물. 담백하다 못해 푸석푸석한 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먹어야 집에 갈 수 있을까! 도루묵국이 나오는 날엔 ‘여태까지 잘 돌아가던 국방부 시계가 도루묵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도루묵 살은 담백하고 부드럽다. 결이 약간 굵지만 비린내가 거의 없다. 감칠맛은 없다. 살에도 약간 끈적거림이 있다. 그래서 도루묵찌개나 도루묵 매운탕은 시원하다. 도루묵 조림은 우선 무를 넙적넙적하게 잘라 냄비 바닥에 깐다. 그 위에 도루묵을 얹은 뒤 양념장을 끼얹으며 자작하게 지지면 된다. 양념장은 간장, 다진 마늘, 생강, 고춧가루, 실고추, 대파, 참기름 등으로 만든다. 살 한 점에 소주 한 잔, 알 한 입에 맥주 한 잔…. 밖에선 함박눈이 미친 듯이 퍼붓는다. 톡톡 입안에서 알이 터진다.
도루묵을 굽는다. 빨갛게 달아오른 숯불. 훈훈한 참나무 냄새. 굵은 소금을 눈 내리듯 살짝 뿌린다. 약간만 노르스름하게 구워야 맛있다. 바싹 구우면 맛이 도루묵 된다. 뻔한 궤도 위를 달리는 기차는 심심하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도루묵 삶’도 하품 나온다. 도루묵을 구워 먹다 보면 뭔가 확 저질러버리고 싶다.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중식의 ‘이탈한 자가 문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