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물로 입을 헹군 뒤 ‘명인주 안동소주’를 반 잔 정도 입에 넣었다.
목을 타고 넘어간 술은 3초 정도 뜸을 들인 뒤 목이 아닌 배 속에서 맛이 올라왔다. 45도면 도수가
꽤 높은데도 목 넘김이 순하고 ‘뒷맛’은 아주 깔끔했다.
한 잔 더 마셔도 마찬가지였다.》
3단계 증류… 45도에도 순하고 깔끔
이 맛보기용 18년산은 ‘명인주 안동소주’를 제조하는 박재서 씨(75·전통식품명인 제6호)가 1992년 ㈜안동소주를 창립해 주류제조면허를 받을 당시 빚은 것이다. 박 명인은 이때 빚은 45도짜리 소주를 오크통에 보관하다 손님이 오면 조금씩 내온다. 그때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명인주 안동소주’의 뿌리는 경북 안동지역의 반남 박씨 문중에서 내려오는 가양주이다. 반남 박씨 10대 손인 유학자 은곡 박진(1477∼1566)이 안동에 정착한 뒤 정부인 안동 권씨가 가양주로 빚은 것이 유래다. 박진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은곡서당(경북유형문화재)은 지금도 안동에 남아 있다. 반남 박씨 25대 손인 박 명인은 그 가양주 전통을 바탕으로 지금의 안동소주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문중의 가양주’ 수준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한층 발전시켰다. 그게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라는 신념이다.
“어머니한테서 배울 때는 가양주 수준이었지만 그 맛으로는 부족하지요. 안동소주만의 깊고 그윽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도록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가령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 전시했을 때 외국인들도 ‘한국의 위스키’로 인정하고 구입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외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게 술에서 냄새나는 것인데, 누룩 때문에 가양주는 결국 농주 수준이거든요.”
박 명인은 쌀과 누룩, 물을 3단계를 거쳐 증류해 소주를 빚는다. 보통 술을 빚는 방식이 2단계인 데 비해 그는 한 단계를 더 거친다. 1∼2단계가 13일, 2∼3단계가 15일이므로 증류를 하려면 한 달가량 필요하다. 물은 안동시 와룡면 고지대의 지하 270m에서 끌어올린 암반수를 쓴다. 이어 100일 숙성한 뒤 ‘명인주 안동소주’가 태어나기 때문에 냄새를 없앨 수 있다. ‘술’을 나타내는 한자도 일반 희석식 소주에 쓰는 것이 ‘酒’인 데 비해 안동소주는 ‘酎’이다. ‘酎’에는 ‘세 번 빚은 술’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기능전수자인 아들 박찬관 씨(53)가 주경야독으로 2004년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유도 전통주의 마케팅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기능전수보조자인 박 명인의 손자 춘우 씨(23·건국대 미생물학과 3년)도 방학 때마다 안동에 와서 소주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아들 찬관 씨는 “‘판매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전통주는 죽는다’고 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서울에 ‘명인주 전시관’을 건립해 전국의 명인술을 전시 판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안동=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