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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생청국장에 무말랭이무침…세상 좋아졌네

입력 | 2010-01-07 12:15:01


20여 시간의 여행 끝에 전지 훈련지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루스텐버그의 헌터스레스트호텔에 5일 도착한 한국축구대표팀.

다음날 아침 식당에 들어선 선수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김치는 물론 오이소박이, 무말랭이무침 등 맛있는 반찬에 생청국장까지…. 한국식 웰빙 식단으로 아침식사를 한 선수들은 시차적응은 물론 컨디션을 회복하고 이날부터 정상적으로 현지 적응훈련에 들어갔다.

이번 한국대표팀의 식단은 파주 축구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의 김형태 조리실장이 담당하고 있다. 김 실장은 고춧가루와 양념 등 기본적인 식 재료를 공수해 온 것은 물론 루스텐버그 인근 요하네스버그 한인 가게에서 매일 장을 봐서 선수들의 입맛을 책임지고 있다.

한국대표팀의 이번 '지원군단'은 14명이나 된다. 팀 닥터인 송준섭 박사와 황인우 재활팀장, 최주영 물리치료사 등 의무 팀 5명을 비롯해 남아공의 불안한 치안 상태를 고려해 선수단 안전을 총괄하는 경호업체 TRI 대표 김성태 안전담당관까지. 대표선수가 총 25명이니 선수 1.8명 당 한 명의 지원이 붙는 셈.

이런 지원 체제는 1990년대 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

특히 해외에 나가기가 쉽지 않았던 1960~70년대.

그래도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체육 관계자들은 미국이나 유럽 등 풍요를 구가하던 선진국에 갈 기회가 많았다. 당시 국내는 경제 부흥을 목표로 한창 허리띠를 졸라매던 시절.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드는 외국의 호텔에 묵게 된 체육 관계자들 중에는 어이없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귀국할 때 선물을 사기 위해 어렵게 구해온 달러를 잘 숨겨둔다는 것이 침대 매트리스 밑에 넣어놨다가 없어져 펑펑 운 사람. 기름진 음식이 맞지 않자 한국에서 가져온 오징어를 호텔방 욕조에서 동료랑 구어 먹으려다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바람에 낭패를 본 사람 등….

1954년 스위스월드컵 때 처음으로 출전권을 획득한 한국축구대표팀은 성적 보다는 대회 장소까지 어떻게 가는가가 더 고민이었다.

당시 항공 사정으로는 선수단 전원이 함께 탈 수 있는 비행기를 구하기가 어려워 일단 1954년 6월 11일 코칭스태프와 선수 11명만 먼저 출발했다. 승객 편의는 완전히 무시한 미국 공군 비행기 안에서 시달린 후 경유지인 로마에 도착한 것이 6월 16일.

이날은 당시 세계 축구 최강으로 꼽혔던 헝가리와의 첫 경기를 불과 하루 앞둔 날. 이렇게 지쳐서 경기에 나섰으니 결과는 뻔하지 않았겠는가. 한국의 0-9 대패.

이후에도 컨디션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한국 선수들은 터키에 0-7로 패한 뒤 귀국 행 비행기를 부랴부랴 타야 했다.

이런 시절과 비교하면 정말 '세상 좋아졌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물론 지원이 크게 향상된 만큼 대표팀에 거는 기대도 세계 16강, 8강, 4강 등으로 크게 높아졌지만….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