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시간의 여행 끝에 전지 훈련지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루스텐버그의 헌터스레스트호텔에 5일 도착한 한국축구대표팀.
다음날 아침 식당에 들어선 선수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김치는 물론 오이소박이, 무말랭이무침 등 맛있는 반찬에 생청국장까지…. 한국식 웰빙 식단으로 아침식사를 한 선수들은 시차적응은 물론 컨디션을 회복하고 이날부터 정상적으로 현지 적응훈련에 들어갔다.
이번 한국대표팀의 식단은 파주 축구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의 김형태 조리실장이 담당하고 있다. 김 실장은 고춧가루와 양념 등 기본적인 식 재료를 공수해 온 것은 물론 루스텐버그 인근 요하네스버그 한인 가게에서 매일 장을 봐서 선수들의 입맛을 책임지고 있다.
이런 지원 체제는 1990년대 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
특히 해외에 나가기가 쉽지 않았던 1960~70년대.
그래도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체육 관계자들은 미국이나 유럽 등 풍요를 구가하던 선진국에 갈 기회가 많았다. 당시 국내는 경제 부흥을 목표로 한창 허리띠를 졸라매던 시절.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드는 외국의 호텔에 묵게 된 체육 관계자들 중에는 어이없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귀국할 때 선물을 사기 위해 어렵게 구해온 달러를 잘 숨겨둔다는 것이 침대 매트리스 밑에 넣어놨다가 없어져 펑펑 운 사람. 기름진 음식이 맞지 않자 한국에서 가져온 오징어를 호텔방 욕조에서 동료랑 구어 먹으려다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바람에 낭패를 본 사람 등….
당시 항공 사정으로는 선수단 전원이 함께 탈 수 있는 비행기를 구하기가 어려워 일단 1954년 6월 11일 코칭스태프와 선수 11명만 먼저 출발했다. 승객 편의는 완전히 무시한 미국 공군 비행기 안에서 시달린 후 경유지인 로마에 도착한 것이 6월 16일.
이날은 당시 세계 축구 최강으로 꼽혔던 헝가리와의 첫 경기를 불과 하루 앞둔 날. 이렇게 지쳐서 경기에 나섰으니 결과는 뻔하지 않았겠는가. 한국의 0-9 대패.
이후에도 컨디션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한국 선수들은 터키에 0-7로 패한 뒤 귀국 행 비행기를 부랴부랴 타야 했다.
이런 시절과 비교하면 정말 '세상 좋아졌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