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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신연수]아시아의 세기

입력 | 2010-01-08 03:00:00


세계 최초로 종이와 나침반을 발명했던 중국,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 고대에는 첨단 과학기술과 화려한 문명을 자랑했지만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세계사의 주역에서 밀려났던 아시아가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하이난 성에서 열린 보아오 포럼에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국제 전문가들은 2010년이 G2시대가 도래하는 원년이 될 것으로 본다. 냉전이 종식된 후 수십 년간 미국 1강 체제였던 국제질서가 미국과 중국의 2강 체제로 간다는 말이다. 국제 외교 분야에서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이미 성큼 다가왔다.

한때 잘나가던 브릭스(BRICs)는 비시스(BICIs)로 바뀌었다. 빠른 경제발전으로 주목받았던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가운데 러시아가 빠지고 대신 인도네시아가 포함된 것. 네 나라 가운데 남미의 브라질을 제외한 세 나라가 모두 아시아다.

특히 중국과 인도는 조만간 세계의 주역이 되리라는 관측이 많다. 중국은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8.7% 성장을 했고 올해는 9∼10% 성장이 예상된다. ‘멈추지 않는 성장 기계’ 중국은 ‘늙은 대륙’ 북미와 유럽에서 줄어든 수요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급속하게 커지고 있다. 인도 역시 지난해 7%대 성장에 이어 올해는 더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의 소비가 침체하면서 중국과 인도 시장은 더욱더 각광을 받고 있다. 두 나라의 부상은 세계시장의 성격과 글로벌 기업들의 경영 전략마저 바꿔 놓았다.

삼성전자는 최근 선진 시장을 대상으로 한 프리미엄 제품 전략을 수정해 대중적인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중국과 인도는 인구가 아주 많아서 부유층뿐 아니라 중저소득층 시장도 엄청난 규모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도의 2200달러(약 250만 원)짜리 ‘나노’ 자동차처럼 비용을 크게 줄인 기업들이 이를 바탕으로 선진국 시장까지 진출할 경우 다른 나라 기업들이 살아남을 길이 없다.

미국 미시간대 로스경영대학원의 C K 프라할라드 교수는 세계 40억 명의 저소득층(BOP·Bottom of Pyramid)이 앞으로 주요 시장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네덜란드 기업 필립스는 인도의 전통 화로를 개량해 에너지효율을 높이고 인체에 해로운 연기 발생을 줄였으나 가격이 1만6000원으로 저렴한 화로를 내놔 히트를 쳤다. 유니레버의 ‘손 씻기 캠페인’을 동반한 비누와 샴푸 판매는 인도의 질병 발생률을 낮췄다. 저소득층의 생활환경을 개선한다는 ‘대의(大義)’도 추구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시장이 바로 BOP 시장이다.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한 아시아가 정치나 문화적으로도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을까.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미국이 하루만 중국이 된다면’이란 가정을 해봤다. 미국의 정치시스템이 이해 관계자들의 로비와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 때문에 종종 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지 못하는 데 비해 중국 정부의 리더십과 효율성이 부러워서 해본 상상이었다. 최태원 SK 회장은 “과거 동양 상인들이 추구한 ‘견리사의(見利思義·눈앞의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먼저 생각한다)’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글로벌 기업들의 사회 책임 경영에 답을 제시하는 가치”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시아의 경제적 부상과 더불어 아시아적 가치도 재조명이 이뤄질 것이 분명하다.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