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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첫 F1드라이버’ 누구? 말레이시아 달군 불꽃 레이스

입력 | 2010-01-08 03:00:00

■세팡 인터내셔널 서킷 르포

귀 찢어질 듯한 굉음…
총 4회 걸쳐 트랙 테스트
5명중 1, 2명 이달 선발
“영광 F1 꿈의 무대 설 것”




7일 말레이시아 세팡에서 열린 포뮬러원(F1) 한국인 드라이버 선발전. 안석원이 모는 머신이 인터내셔널 서킷 트랙을 질주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는 한국자동차경주협회의 심사를 거친 5명이 참가했다. 선발전에서 뽑힌 선수는 10월 전남 영암군에서 한국 최초로 열리는 F1 그랑프리에 출전해 한국인 첫 F1 드라이버가 된다. 사진 제공 KAVO

7일 말레이시아 세팡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열린 포뮬러원(F1) 한국인 드라이버 선발전. 성난 황소 같던 머신(자동차 경주차량)은 중간 점검을 위해 피트(경주 트랙 옆에서 급유와 타이어 교환 등이 이뤄지는 곳)에 들어서자 순한 양으로 변했다. 시동이 완전히 꺼진 머신은 엔지니어들의 손에 이끌렸다. 드라이버들은 손짓으로 차량 상태를 전달했다. 머신 안으로 몸 전체가 들어가기 때문에 외부로 보이는 건 헬멧뿐이다. 빠끔히 드러낸 얼굴로 눈만 껌뻑거리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했다.

하지만 점검을 마치고 다시 트랙 위로 들어선 머신은 돌변했다. 말로만 듣던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이 불어닥쳤고 아스팔트를 태울 듯한 열기가 트랙을 휘감았다. 총 네 번에 걸친 트랙 테스트가 끝날 때마다 드라이버들은 우주복 같은 옷의 상의를 반쯤 벗고 땀을 쏟아내기 바빴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말레이시아의 습한 기운이 더해진 트랙 위에서 후끈 달궈진 엔진보다 뜨거웠던 것은 꿈의 무대를 향한 한국 청년들의 의지였다. 올해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F1 그랑프리(10월 22∼24일 전남 영암군)가 열린다. F1은 매년 5억 명 이상이 시청하는 세계적 스포츠이지만 한국은 아직 불모지나 마찬가지다. 대회를 주관하는 KAVO(Korea Auto Valley Operation)는 국민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F1 무대에 한국인을 내보낸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번 선발전은 F1에 데뷔시킬 드라이버 한두 명을 뽑는 자리이다.

선발전 참가자는 5명. 한국자동차경주협회(KARA)의 사전 심사를 거친 이들이다. 유경욱(30)은 투어링카 대회인 2008년 GT 마스터스 챔피언에 오른 실력파. 황진우(27)와 안석원(23)은 대를 이어 핸들을 잡은 드라이버 2세들이다. 아버지 황운기 씨, 안병환 씨의 질주에 매료됐던 둘은 또래 친구들이 카트라이더(컴퓨터 게임)를 즐기던 중고교 시절 카트를 직접 몰며 드라이버의 꿈을 키웠다. 재일교포 3세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각종 대회를 휩쓴 주대수(30)와 네덜란드에 입양돼 독일 F3 무대에서 활약한 최명길(25)도 경합에 나섰다.

이들은 주행 테스트 전에 꼼꼼한 신체검사를 거쳤다. F1 드라이버에게는 근력, 심폐지구력 등 기본 능력 이외에 강한 목 근력이 요구된다. 좁은 차체 내에서 충격을 받다 보면 목 부상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 또한 강한 의지와 함께 냉정함도 갖춰야 한다.

KAVO는 신체, 주행 테스트를 비롯해 외국어 능력 등 여러 심사를 거쳐 이르면 이달 안에 영광의 주인공을 발표한다. 정영조 KAVO 대표는 “선발된 드라이버를 드라이빙 스쿨에 입학시킬 계획도 있다”며 “2년 안으로 한국인이 F1 서킷을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F1 강국 독일 출신으로 선발 과정을 지휘한 잉고 마터 씨는 “유럽은 어릴 때부터 자동차 경주를 즐기는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많은 드라이버를 배출한 것뿐이다. 신체조건과 운동신경 등 드라이버로서의 가능성은 독일인과 한국인 모두 비슷하다”며 “선발전에 참가한 5명 모두 세계적 드라이버가 될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세팡=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 선발전 참가 최명길
25년 전 태어난 지 6개월만에 네덜란드 입양
11살 때 J카트 챔프… 한때 생모 찾으려 노력도


세팡=한우신 기자

헬멧을 벗은 그는 더운 숨을 내뿜었다. 안면 근육이 아플 정도로 꽉 조이는 헬멧 탓에 머리카락은 제멋대로였다. 기다렸다는 듯 굵은 땀줄기가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아래로 드러난 그의 눈은 작았다. 쌍꺼풀 없는 눈망울에 수줍은 듯한 미소가 더해진 전형적인 한국형 꽃미남이었다. 7일 말레이시아 세팡에서 열린 포뮬러원(F1) 한국 드라이버 선발전에 참가한 레카르도 브라윈스 최(25·사진), 한국 이름으로는 최명길 얘기다.

최명길은 1985년 서울에서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네덜란드로 입양됐다. 카트 레이싱이 취미인 네덜란드 아버지의 영향으로 5세 때 처음 카트 운전대를 잡았다. 11세 때 네덜란드 북부 미니 주니어 카트 챔피언에 오를 정도로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그의 몸속에는 오래전부터 트랙을 질주하는 뜨거운 피가 흘렀고 그 속에는 한국인의 피가 숨쉬고 있었다.

모국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가졌던 그는 2006년 겨울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인을 만나고 싶었고 한국을 알고 싶었다. 그때 만난 한국인 친구는 그에게 한국 위인전을 선물했다. 그는 네덜란드로 돌아간 뒤 F1의 3부 리그 격인 F3 대회에 출전할 때 머신(자동차 경주차량)에 한국 위인의 이름을 한글로 새겨 넣었다. 보통은 후원 기업이나 단체의 로고를 붙이기 마련이다. 별다른 스폰서가 없던 그에게 단군, 이순신 등 모국의 위인들은 든든한 후원자였다.

그는 2007년 독일 F3 대회에서 종합 3위를 차지하고 F1 2부 리그라 불리는 GP2 드라이버 테스트에도 합격했다. 그의 사연과 실력은 점차 알려져 한국계 최초 F1 드라이버를 노리는 단계까지 왔다. 그는 지난해 8월 CJ 오 슈퍼레이스에 참가하며 한국 무대에 데뷔했다. 현재 서울에 살며 이화여대 어학당에서 한국어 수업을 받는 등 한국인이 되는 데 열심이다.

다국적 팀별 대항전인 F1에서 국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빼어난 실력과 애틋한 스토리까지 갖춘 최명길은 국내에서 F1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흥행 카드로 제격이다. 영화 ‘국가대표’ 주인공의 스토리와도 비슷하다.

실제로 그는 2007년 9월 한국을 찾아 TV에 출연해 한국 생모의 이름을 밝히며 “꼭 만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적잖은 화제가 됐지만 그 후로 아무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는 “지금은 어머니를 찾을 이유가 없다”는 말로 최근 심정을 표현했다. 지금 그에겐 어머니를 찾는 것보다 더 크고 뜨거운 목표가 있는 듯했다.

세팡=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