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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에 문화센터를 열었다고요?

입력 | 2010-01-08 03:00:00

중앙대 최대식 교수 등 20여명 숭인시장에 ‘풍덩학교’
“추억어린 전통시장 살리기 노력”… 상인들도 “감사”



7일 서울 강북구 송천동 숭인시장 내 풍덩예술학교에서 중앙대 예술대 최대식 교수(오른쪽에서 세번째)와 강사들이 11일 개강을 앞두고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매콤한 떡볶이와 방금 찐 떡, 5000원짜리 넥타이 등이 어우러진 서울 강북구 송천동 숭인시장 한쪽에서 7일 오후 갑작스레 ‘풍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물건을 고르던 손님들과 상인들의 눈길이 일제히 쏠린 곳에선 시장에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강의실을 배경으로 돼지머리와 떡 등 고사음식이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풍악을 울리던 주인공들이 외쳤다. “자, 풍덩예술학교에 한번 ‘풍덩’ 빠져보세요. 전통시장이 힘내도록 일조하겠습니다.” 중앙대 예술대 최대식 교수(63)를 비롯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채고예술마당’은 숭인시장 한가운데 ‘풍덩예술학교’를 개설해 7일 개원식를 열고 수강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수업은 11일부터 시작된다.

“어머니 손을 잡고 찾은 재래시장에서 눈깔사탕을 사먹던 추억이 생생한데 요즘 아이들에게도 그런 기억을 남겨주려면 재래시장이 힘을 잃어선 안 되겠더라고요.”

‘채고예술마당’ 회원들이 재래시장에 문화센터를 열게 된 이유는 나날이 위축돼가는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다. 백화점에 있는 문화센터를 재래시장에도 만들어 수준 높은 강의로 수강생을 모으고 이를 통해 재래시장에도 도움을 주자는 것. 재래시장 내 문화센터지만 강사진은 화려하게 구성했다. 학교 원장은 최대식 교수가 맡고 최병훈 인장공예 명장, 허정민 부산 신라대 교수 등 20여 명의 현직 교수와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강의에 나섰다. 최 교수는 “수업료는 무료인데 재래시장도 살리고 지역시민들에게 ‘문화’도 고취하자는 취지에 공감한 이들이 대가 없이 동참을 결정했다”며 웃었다.

물론 우여곡절도 있었다. 회원들끼리 의기투합해 2개월 전부터 장소를 물색하고 시장상인들에게 직접 아이디어를 홍보했지만 처음에 상인들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시장에 웬 문화센터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이들의 열정을 본 상인들은 서서히 마음을 열었고 시장 대표도 선뜻 장소를 내줬다. 강북구청과 강북경찰서도 책상 자재 등의 후원에 나서줬다. 자신의 상가를 학교 강의실로 제공한 숭인시장 강재풍 대표는 “그동안 장사가 안돼 빈 점포가 늘면서 시장이 흉물스러웠는데 예술학교 덕분에 시장이 문화와 예술이 흐르는 곳으로 변모해 손님이 넘쳐나고 상인들이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앞으로 풍덩예술학교에서는 주부들에게 종이공예, 도자기 만들기, 종이접기 등을 가르칠 예정이다. 상인 자녀들을 위한 중학생 수학 수업도 진행한다. 수업이 없을 때에는 북카페나 상인들과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개방한다. “주부 수료자들이 기술을 익혀 취업을 하거나 방과 후 교사 등으로 활동할 수 있게끔 지원할 생각도 있어요.”

7일 ‘풍덩예술학교’를 바라보는 상인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역력했다. 시장에서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조연경 씨(58)는 “눈만 뜨면 저 학교가 언제나 문을 여나 지켜봤다”며 “이렇게 전통시장을 살리겠다고 나서주니 감사할 뿐”이라며 웃었다. 시장을 찾은 주민들도 긍정적인 반응들이다. 이제 중학교 1학년이 되는 딸과 함께 장 보러 나온 김현미 씨(43)는 “어린이 강좌나 어린이 도서관 같은 것도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상점에는 벌써 학교 프로그램 안내책자가 구석구석 놓여있었다. 한 상인은 쑥스러운 듯 말했다. “손님들 보라고 가져다놨지. 손님들이 수업 들으러 시장 오면 우리야 좋은 것 아니겠어?”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