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os! 해발 3800m에 새 물길이 열린다, 미래가 열린다”年강우 600mm 만성 물부족호흡곤란-일교차 견디며21.3km 관개수로 공사 진행“농산물 생산 2배로 늘어나면아이들 교육도 시킬수 있겠죠”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남쪽으로 489km 떨어진 안데스산맥 고산지대에 자리 잡은 리오밤바 시. 시내 고도가 해발 2800m에 이르는 이곳 침보라소 주정부 청사 집무실에서 만난 마리아노 쿠리카마 주지사는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당초 주지사와의 인터뷰는 예정에 없었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만나기도 어렵다고 했던 그였다. 잠깐 짬을 낸 주지사에게 한두 가지 질문을 하고 자리를 뜨려 하자 주지사가 손을 잡았다. “특별한 손님에게 얘기해 줄 것이 많다”면서.
그는 에콰도르 원주민(인디오) 출신으로 주지사에 올라 지난해 재선에 성공했다. 인디오들은 저개발국 에콰도르에서도 최극빈층에 속한다. 인디오들은 에콰도르 인구의 25%를 차지하지만 스페인 식민지 시절 안데스산맥으로 숨어 들어간 뒤 고산지대의 척박한 산비탈에 밭을 일구거나 가축을 키우며 살아왔다.
에콰도르는 연간 강우량이 600mm에 불과하다. 최근엔 우기인데도 비가 오지 않아 심각한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침보라소 주는 변변한 인공수로가 없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존 수로들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골짜기가 전부였다. 흐르는 물의 40%가 땅속에 스며든다. 오스왈드 디아즈 침보라소 주 토목국장은 “수로로 쓰는 골짜기가 깊이 파이고 끊겨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착공식이 열린 날 수로 시작점인 깊은 산속에 침보라소 전 지역에서 약 1400명의 주민이 몰렸다. 전통 의상을 입고 흥겨운 한판 축제를 벌이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고 한다.
주지사와 헤어진 뒤 바로 그 현장으로 향했다. 경사가 급해 차량이 올라갈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험한 산길이었다. 도착한 현장은 자외선이 강하게 내리쬐지만 밤에는 체감온도가 영하로 내려갈 정도로 서늘한 곳이다. 적도가 지나가는 나라(에콰도르는 스페인어로 ‘적도’라는 뜻)여서 이런 기후를 상상하지 못했다.
이곳에서 동신기술개발 직원 2명과 원주민 출신 일꾼들이 극심한 일교차와 싸우고 있었다. 유승호 현장소장은 털 달린 두꺼운 오리털 파카를 입고 얼굴에는 자외선을 막으려 두껍게 선크림을 발랐다. “고지대여서 호흡곤란을 느낄 때도 많아요.”
“고마워요, 코리아”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에콰도르 침보라소 주의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건설하는 관개수로 앞에서 KOICA 단원과 원주민 출신 일꾼들이 한국과 에콰도르의 우정을 상징하는 팻말을 들고 밝게 웃고 있다. 수로에는 침보라소 주민들의 농업, 목축에 쓰일 물이 흐르고 있다. 침보라소=윤완준 기자
완성 구간에는 태극기와 에콰도르 국기가 함께 그려진 팻말이 일정한 간격으로 꽂혀 있었다. 세군도 씨(21)는 “한국에 대해 전혀 몰랐다. 한국인도 에콰도르를 잘 모를 것이다. 우리를 모르는 나라가 무상으로 수로를 만들어 준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김영렬 에콰도르 KOICA사무소 주재원은 “수로가 완공되면 침보라소 농민 6000명(1200가구)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며 “농산물 생산량이 2배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작 가능한 면적은 780만 m²에서 1300만 m²로, 1년 중 농업이 가능한 기간은 7개월에서 1년 내내로 늘어난다.
아직 완공 전이지만 침보라소 주민들의 기대는 상상 이상이다. 김원세 동신기술개발 단장은 “인근 마을 주민들이 수시로 삼삼오오 올라와 공사 현장을 찾아 지켜본다”고 말했다. 이날도 주민들이 올라왔다. 건조한 기후가 계속되면서 부족한 물을 서로 끌어가려고 마을 간에 다툼이 일어날 정도로 이들에게 물에 대한 절실함은 크다.
유 소장이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쿠리카마 주지사가 아침 일찍 공사현장을 깜짝 방문했었다는 것이다. 유 소장에게 10번 넘게 악수를 청하며 “대단히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고 했다. 주지사는 집무실에서 기자를 만났을 때 현장 방문 얘기는 하지 않았다.
침보라소 주에서 만난 주민들도 비슷한 꿈을 말했다. 수로 꼭대기에서 16km 지점의 라호세피나 마을 주민들의 기대는 특히 컸다. 다음 날 마을을 찾았을 때 주민 60명이 나와 박수로 반겼다. 마을 대표인 마누엘 미파 씨(40)는 “마을의 숙원 사업이 이뤄졌다”고 외쳤다. 주민 모두 다시 밭을 일구고 가축을 키울 꿈에 젖어 있다고 말했다. 인근 마을에서 일부러 왔다는 마누엘 오카냐 씨(80)는 “기존 수로로는 삶을 이어가기 힘들다는 낙담을 평생 숙명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물 걱정이 없어진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KOICA가 지원하는 관개수로는 침보라소 주를 흐르는 물줄기의 본선이 된다. 이 관개수로를 기본 줄기로 세계은행이 지원하는 63개 지선 수로가 건설된다. 김영렬 KOICA 주재원은 “리오밤바 시에 영농기술교육센터와 농기계 보관창고도 함께 세워 에콰도르에 최신 영농기법을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KOICA는 2월 주정부 관계자 등 10명을 한국으로 보내 관개수로 관리와 영농기술 등에 대한 연수를 받게 할 계획이다. 주정부 스스로 수로를 관리할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주지사의 말처럼 침보라소 주민들에겐 새로운 미래가 열리고 있다.
침보라소·코토팍시(에콰도르)=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한국이란 나라는 잘 모르지만 우릴 돕는 8명의 친구는 알죠”
교민 한명도 없는 지역서 축사 지어주고 의료활동▼
“디오스(Dios·하느님 감사합니다)!”
에콰도르 침보라소 주의 빈곤층 장애아학교에서 이윤주 단원이 인디오 어린이에게 물리치료를 해주고 있다. 앞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지원한 물리치료기가 보인다. 침보라소=윤완준 기자
수의학 전공자인 정 씨는 인디오 농가에 돼지 관리 방법을 전수하고 있다. 그가 담당하는 마을 중 가장 빈민이 많은 피창과 칼치가 마음에 걸렸다. 침보라소 주정부가 원주민들의 생활 개선을 위해 돼지를 무상 제공했지만 변변찮은 축사 때문에 돼지가 추위를 견디지 못해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보다 못한 정 씨는 리오밤바 시에서 토목공법을 조언하는 최종혁 KOICA 단원(31)과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본래 임무와는 별도로 피창과 칼치에 돼지 축사를 짓고 있다. 이들은 “돼지가 잘 크고 새끼를 많이 낳아야 주민들이 돈을 벌어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다”며 밝게 웃었다.
침보라소 주에는 한국 교민이 없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도로를 질주하고 삼성과 LG 제품이 인기지만 한국은 잘 모른다. 그러나 KOICA 봉사단원 6명과 동신기술개발 직원 2명이 이곳에 ‘돕는 나라 한국’을 알리고 있다. 마리아노 쿠리카마 침보라소 주지사는 “우리 주에 한국 교민은 없지만 가난을 벗어나게 해주는 8명의 한국 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귀국한 이윤숙 단원(35)은 침보라소 주 보건소에 주 최초의 건강검진센터를 설립했다. 빈곤층 장애아의 물리치료를 돕는 이윤주 단원(26)은 장애아학교에 물리치료를 위한 수중클리닉을 만들고 있다. 침보라소 주에서 차로 2시간가량 떨어진 코토팍시 주 푸힐리 시의 홍인경 단원(33)은 주 최초로 홀몸노인들을 위한 노인생활시설을 건립했다.
▼“한국 배우자” 공무원-대학생 견학 러시
수로건설 기술 전수▼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에콰도르 관개수로 건설 사업은 한국의 앞선 토목 기술을 에콰도르에 전수하는 기회도 되고 있다. 수로 건설 현장은 수준 높은 토목 기술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입소문이 퍼져 일주일에 한 번꼴로 토목학과 학생과 정부 관계자들이 단체로 견학을 온다.
동신기술개발 김원세 단장은 “우리에게는 기초인 토목기술이 에콰도르인들에게는 최신 공법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수로의 낙차공(물 속도를 줄이는 공법)이 대표적이다. 해발 3800m 산에서 내려오는 관개수로는 길이가 무려 21.3km에 이른다. 수로를 흐르는 물의 속도가 너무 빠르면 농업이나 목축용수로 물을 대기가 어렵다. 동신기술개발은 거푸집 공정, 시멘트와 물을 섞는 작업의 속도를 향상시키는 기술도 전수하고 있다.
침보라소 주정부의 토목국장 오스왈드 디아즈 씨는 한국의 일처리 속도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세계은행이 5년 전부터 끌어온 수로 사업을 2년 만에 실현해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