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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공조” vs “정책간섭”… 연초 금융가 달구는 ‘힘 겨루기’ 2제

입력 | 2010-01-09 03:00:00

재정부 차관, 11년만에 금통위 회의 참석… ‘한은 독립성 훼손’ 논란
기준금리 2%로 11개월째 동결





새해 처음으로 8일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허경욱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참석했다. 정부가 11년 만에 한은 금통위에서 ‘열석 발언권’을 행사한 것이다. 정부가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회의는 별다른 소동 없이 진행됐다. 이날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연 2.0%로 11개월 연속 동결했다.

8일 오전 8시 45분 허 차관이 탄 관용차가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은 본관에 도착했다. ‘관치금융 철폐’ 집회를 벌이던 한은 노조원 20여 명이 허 차관의 차를 막아서며 긴장감이 감돌았다. 잠시 차가 멈췄지만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허 차관은 이주열 한은 부총재를 잠시 면담한 뒤 금통위 회의실에 입장했다. 어색한 표정의 허 차관에게 금통위원들이 “오늘의 주인공”이라며 농담을 던지자 허 차관이 일어서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인사를 했다. 그는 “통화정책의 독립성은 명백히 금통위에 있지만 정책 당국 간 공조 강화를 위해 열석 발언권을 행사하는 것”이라며 “한국 경제의 위험 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굳은 표정으로 인사말도 없이 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들었다.

이날 회의는 평소와 큰 차이 없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허 차관은 금통위원들의 발언이 끝난 뒤 이 총재로부터 발언권을 얻어 4분가량 열석 발언권 행사의 정당성과 함께 올해 상반기 고용 및 수출 시장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설명했다. 기준금리 방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허 차관은 회의 중에 다른 언급은 없이 준비해 온 자료를 보거나 종종 메모를 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회의가 끝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의 열석 발언권 행사에 대해 “금통위의 의사결정은 금통위원 7명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통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결과를 보고 판단하면 된다”며 “말보다는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은 내부는 상당히 격앙된 분위기다. 한 간부는 “금통위원들의 발언은 비공개가 원칙으로 의사록에서도 익명으로 요약된 내용만을 공개하고 있다”며 “재정부 차관이 금통위 회의실에 앉아 있는 것은 사실상 재정부 장관이나 대통령이 금통위원 발언을 모니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다른 간부는 “한은이 정부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인식을 시장에 줄 경우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금통위는 금리 동결을 의결했지만 금리 인상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격론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에서 11년 만에 갑자기 연중에 금통위에 참석한다고 하면 ‘사시(斜視)적 시각’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판단해 신년 하례를 겸해 1월부터 참석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리 인상이 임박한 시기에 열석 발언권을 행사하면 오해를 더 살 수 있는 만큼 인상 가능성이 낮은 연초부터 참석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금통위 참석을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장민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열석 발언권 행사가 부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금통위원들도 정부가 참석한다고 의견을 바꿀 정도로 약한 분들이 아닐 것”이라며 “금리 인상을 둘러싼 정부와 한은의 논리 싸움이 선명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열석발언권:

한국은행법 91조에 따라 기획재정부 차관이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해 위원(7명)들과 나란히 앉아(列席) 발언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단 의결권은 없다. 과거 열석발언권 행사는 1998년 4월부터 4차례뿐이었고 참석 이유도 취임을 겸한 상견례 성격으로 통화정책 논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2008년 정부 조직을 개편하면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의 열석발언권도 추가됐다. 다만 금융위 부위원장은 금융위 소관사항에 한해서만 열석 발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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