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출근 첫날 서울 토박이인 아파트 경비원은 부지런히 삽질을 하면서 “60 평생에 이런 눈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하늘을 희뿌옇게 뒤덮은 눈발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이날 청와대에서는 올해 첫 국무회의가 열렸고 기업들은 시무식을 했다. 장관 2명이 국무회의에 지각했고 3명은 아예 참석도 못했다. 한강을 건너 남산터널을 통과하는 데만 세 시간이 걸린 운전자도 있었다. 지하철 환승역마다 밀려드는 인파로 일부 기능이 마비되고 전철이 20분 이상 지체되기도 했다.
폭설이 멈추자 분풀이를 하듯 기상과 교통 관련 기관들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지하철은 승객이 몰릴 상황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고 뭇매를 맞았다. 도로공사는 나들목 통제를 제대로 못해 고속도로를 주차장으로 만든 과오가 드러났다. 눈이 2∼7cm 내릴 것이라고 예보한 기상청도 동네북이 됐다. 서울시와 구청도 혼쭐이 났다. 오세훈 시장이 겉멋만 부리느라 교통소통과 눈치우기 행정에 소홀하다고 다들 한마디씩 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지난 150년 동안 1인치(2.54cm) 이상 눈이 온 기록이 6차례다(4일 서울의 강설량은 10인치를 넘었다!).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는 10년 만에 겨우 한 번 눈 구경을 할 정도다. 1976년 2월 5일 이후 눈이 1인치 이상 온 적이 없다. 1인치 정도의 눈에도 경사가 심한 도심 도로는 교통이 마비되기 일쑤다. 눈을 빨리 치우라는 아우성은 없다. 당시 신문보도를 들춰보면 어린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리는 전차를 향해 눈 뭉치를 던졌다고 전했다. 20∼30년 만에 오는 1인치의 눈에 대비해 시청이 제설차를 다수 구비하거나 염화칼슘을 대량 저장하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럴 돈이 있으면 더 긴요한 인프라를 갖추는 편이 낫다.
인구 1000만 명의 서울에서 한 세기 만에 쏟아진 폭설에도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고, 시무식에 지각한 사원도 소수였다. 지하철 운행은 갑작스럽게 과부하가 걸린 점을 고려하면 B학점 정도는 됐다. 장관 5명도 지하철을 탔더라면 국무회의에 지각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부 언론에는 분노가 넘쳐나서 25.8cm의 강설량에 차를 몰고 나온 무모함을 자성하거나, 골목길의 눈을 스스로 치우자는 목소리는 뒷전으로 밀렸다.
서구가 수백 년 동안 이룬 민주화와 산업화를 몇십 년 만에 압축 실현하는 사이에 쉽게 분노하는 조급증은 한국인의 새로운 체질로 굳어지는 것 같다. 신호등에서 출발이 조금만 늦어도 뒤차가 빵빵거린다. 신문의 표제를 장식하는 사건이 터지면 으레 최고위 관계자 문책이 거론된다. 우리나라는 분노한 민심 달래기용 개각이 많아 장관이 1∼2년 만에 바뀐다. 미국에서는 2001년 9월 11일 엄청난 테러사건이 발생했지만 정보기관 시스템만 바꿨을 뿐 책임을 지고 물러난 고위직은 없었다.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저서 ‘신(新)국가개조론’에서 ‘장관이 빨리 바뀌어 전임자의 정책으로 후임 장관이 평가받는 시스템이 되다 보니 성공한 장관이 되려면 전임자 복이 있어야 한다’고 썼다.
군에서도 사고가 나면 중대장 연대장은 물론이고 사단장과 군단장까지 문책을 당한다. 실탄과 폭탄을 다루고, 강도 높은 훈련을 하는 군에서는 민간보다 인명 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다. 미국 군대는 해당 부대의 사고율을 따져 전체 평균보다 높을 경우에만 문책을 한다. 이에 비해 한국 군대는 단일 사건이라도 여론이 얼마나 분노하느냐에 따라 우수수 떨어지는 별의 수가 달라진다.
한국이 노변 카페가 발달하지 않고 ‘인스턴트커피’의 왕국이 된 것도 조급증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은 세계 11위의 커피 수입국이지만 자판기와 커피믹스가 점령하다시피 했다. 분위기를 갖춘 장소에서 수십 가지 커피 중에 그날의 기분과 취향에 따라 하나를 선택해 이런저런 재료를 섞어 커피가 만들어지기를 차분하게 기다렸다가 향과 맛을 즐길 여유가 없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선 채로 마시면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바쁘게 휴대전화 문자를 두들긴다. 이러한 조급증이 정보기술(IT) 강국을 만들었겠지만 이제는 선진국 문턱에서 여유와 너그러움 그리고 넉넉함의 문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때가 됐다.
겨울에 춥고 눈이 많이 오면 그해 병충해가 적고 수량이 풍부해진다. 그래서 눈이 많이 오는 해에는 풍년이 들어 농경사회의 조상들이 기뻐했다. 우리 경제가 쌀농사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인의 DNA에는 아직도 농경민 의식이 남아 있어서인지 눈이 오면 흥겹다. 올해는 분노의 정치도 푸근해지고, 위기를 넘긴 경제도 풍년이 들면 좋겠다. 새해에 눈이 온 날의 들녘처럼 모두 여유롭고 너그러워지기를.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