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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공부/SCHOOL DIARY]“새해 원대한 새 포부, 엄마는 왜 몰라주실까”

입력 | 2010-01-12 03:00:00


경인년 새해가 밝았다. 시험과 점수의 압박에 시달리는 학생들 중엔 연초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성적 향상’ ‘수능 대박’의 소원을 빈 학생이 적지 않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들어가 우주선을 만들겠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이 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종이에 큼지막하게 적어 책상머리에 붙인 학생도 있다.

초등학생부터 대입 시험에 무한 도전하는 ‘장수생’까지 한 해를 시작하는 학생들의 새해 소망은 각양각색이다. 연초 시작된 자녀의 이상행동에 적잖이 당황한 부모라면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자녀의 돌발행동엔 부모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뜻이 담겨 있을지 모른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방모 군(12·서울 성북구 장위동)은 연초부터 용돈 인상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한 달 용돈 4000원이었던 지난해보다 5000원 더 올려달라는 방 군의 요구는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 초등학생이 무슨 돈이 필요할까. 방 군의 이런 행동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방 군의 올해 목표는 전교회장에 당선되는 것. 국제중이나 외국어고에 입학하는 게 꿈인데, 입시 서류전형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자기의 장기인 리더십을 부각시키고 싶다. 전교회장에 당선돼 하루 종일 일하는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크다.

“전교회장에 당선되려면 절 적극적으로 지지해 줄 친구들을 포섭해야 해요. 친구들에게 떡볶이라도 한번 쏘려면 용돈이 더 필요한데, 엄만 왜 이해를 못하실까요?”(방 군)

방 군은 1학기 초에 실시되는 전교회장 선거에서 떨어지면 2학기 초에 재도전할 계획이다. 공부 잘하고 성격 좋은 친구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중간·기말고사 1등’ ‘급식도우미 자원봉사’ 같은 구체적 행동지침도 세웠다.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되는 조모 군(13·경기 안양시)의 올해 목표는 인기 아이돌 그룹 ‘2PM’ 같은 ‘짐승돌(남성적이고 저돌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돌 그룹을 지칭하는 말)’이 되는 것이다.

반에서 1등을 도맡아 해온 조 군은 남부럽지 않은 성적이지만 키 160cm에 55kg의 통통한 외모 때문에 또래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는 게 아쉽다. 조 군은 연초부터 ‘인스턴트식품 먹지 않기’ ‘오후 9시 이후 야식금지’ ‘초콜릿, 아이스크림 금지’ 같은 세부 규칙을 정해 철저히 지키고 있다.

부모님은 ‘외모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고 얘기하지만 조 군은 외모야말로 자신 있게 학교생활을 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조 군은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는 선에서 음식 조절과 운동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이모 양(17·전남 나주시)은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되려고 학원에 다닐 예정.

“부모님께선 ‘공부해서 대학가라’고 하시지만 평소 손재주가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스타일리스트가 되면 개그맨 유재석 같은 스타의 외모를 제가 직접 연출할 수 있잖아요? 잘생긴 아이돌 그룹의 스타일리스트가 되면 아무리 힘들어도 일하는 게 즐거울 것 같아요.”(이 양)

이 양은 고2 땐 미용학원에, 고3 땐 메이크업 전문학원에 등록해 기술을 익힌 후 스타일리스트 학과가 있는 ○○대학에 지원하겠다는 장기계획도 수립했다.

지난해까지 연속 4번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장수생’ 임모 씨(23·서울 동작구 사당동). 그의 올해 목표는 ‘노량진 입시학원가 탈출’이다. 치대를 목표로 고3 때부터 지금까지 수능 하나만 바라보며 달려온 세월이 때론 아깝기도 하지만 인생의 목표가 확실한 만큼 후회는 없다.

“아무 말 없이 용돈 주시는 부모님께 죄송해서 이달 초부터 동네 보습학원에서 자율학습하는 학생들을 감독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적은 돈이라도 올해부턴 제가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 있도록 일도, 공부도 더 열심히 할 거예요.”(임 씨)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