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직 40대 70여차례
“나, 근처 병원장인데요….” 지난해 12월 3일 오후 울산 남구 신정동 모 약국 약사는 인근 치과병원 원장이라고 밝힌 남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 남자는 병원에서 떨어진 곳에서 차량 사고가 나 수리를 맡겼는데, 당장 가진 돈이 없으니 찾아가는 카센터 직원에게 수리비를 대신 주면 내일 갚아주겠다고 했다. 약사는 약 1시간 뒤 카센터 직원이라며 찾아온 40대 남자에게 30만 원을 건넸다. 하지만 다음 날 그 병원장에게 문의한 결과 차량 사고도, 전화를 건 사실도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병원장을 사칭해 사기행각을 벌인 이모 씨(41·무직·경기 수원시 장안구)에 대해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해 9월부터 이달 초까지 울산과 부산 등 전국 약국과 안경점, 피부관리실 등을 상대로 70여 차례에 걸쳐 업소당 30만∼60만 원씩 총 5000여만 원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병원 근처 가게 주인들은 병원과 잘 지내야 한다는 마음에서 의사에게 쉽게 돈을 빌려줄 것으로 생각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 씨가 이웃 병원의 의사임을 밝히면서 요구한 돈의 액수가 그다지 크지 않아 속은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