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의 ‘한국인 듀오’ 임창용(왼쪽)과 이혜천을 7일 서울 강남의 한 일식집에서 만났다. 2년 연속 야쿠르트의 뒷문을 든든히 지킨 임창용은 “여성 팬이 좀 늘었다. 주말 경기 때는 음료수나 과자 등이 든 쇼핑백을 대여섯 개씩 받는다”고 말했다. 이혜천은 “난 유부남이라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없다”며 웃었다. 홍진환 기자
■ 임창용
한국 선수들 상대하기 부담
태균-범호와 붙고 싶지 않아
■ 이혜천
두선수 내 공 정말 잘 쳤는데…
팀은 다르지만 日서 잘했으면
7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일식집에서 이들을 만났다. 둘은 다사다난했던 지난해 이야기와 올해의 각오 등을 유쾌한 수다로 풀어냈다. 먼저 첫해 일본 무대에 연착륙한 이혜천이 궁금했다.
▽임창용=참 특이하다. 폼도 특이하고, 인상도 특이하다. 한마디로 인상이 살벌하다(웃음). 잘 던질수록 얼굴이 더 붉으락푸르락 구겨진다.
▽이혜천=마운드에 오를 때면 이제 내 차례구나 싶어 신이 난다. 특히 오가사와라 미치히로(요미우리)처럼 좋은 선수가 나오면 “너 이제 죽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절로 인상이 써진다. 그런 캐릭터 때문인지 지난해엔 ‘위장 선발’로도 몇 번 나갔다. 일본에는 선발 예고제가 없어 날 선발인 것처럼 하고 오른손 투수를 내보내 효과를 좀 봤다.(웃음)
팀 동료들은 임창용에게 ‘신사’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혜천에 대해서는 ‘임창용과 정반대인 선수’라고 평한다. 임창용에겐 카리스마가, 이혜천에겐 친화력이 있다는 얘기다.
▽임=야쿠르트 애들이 어리기 때문이다. 나보다 고참이 2명 있었는데 한 명은 트레이드됐고, 또 한 명은 2군에만 머물렀다. 졸지에 투수 최고참이 된 거다. 내 바로 밑이 혜천이다. 우리가 투수 넘버 원, 넘버 투다.
임창용은 ‘게으른 천재’ 또는 ‘반항아’의 이미지가 강하다. 지난해 올스타전에서는 임창용의 지각으로 올스타 선수들의 비행기가 연착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전 결승에서는 사인을 거부하고 스즈키 이치로(시애틀)와 정면 승부해 역전타를 맞았다는 의혹도 있었다.
▽임=솔직히 게으르다. 쉴 때는 쉬고 할 때는 하자는 게 내 주의다. 하지만 1년을 지내보니 진정한 천재는 내가 아니라 혜천이라는 걸 알았다. 나보다 운동 안 하는 선수는 처음 봤다. 그렇게 연습 안 하면서 잘 던지니 말이다.
▽이=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그런데 형보다 늦게까지 훈련한 적은 없는 것 같다. 형은 훈련은 많이 안 하지만 할 때의 집중력은 무섭다. 형의 30분은 다른 선수의 3시간이라고 할까. 언젠가 복근운동을 같이했는데 식은땀이 다 났다.
둘은 분명 남들이 갖지 못한 재능을 타고 났다. 임창용의 몸무게는 10년 넘게 80kg이다. 시속 160km를 던져 일본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임=날 보면 술 잘 먹고 잘 놀 것 같다고 한다. 사실 술을 못 먹는다. 작정하고 마시면 폭탄주 10잔 정도야 먹겠지만 머리 아픈 것도, 얼굴 빨개지는 것도 싫어서 아예 안 마신다. 해태에 신인으로 입단해서는 좀 힘들었다. 160km는 나도 전혀 상상 못 했다. 정말 기뻤다. 아직 내 몸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수에게 스피드는 곧 자신감이다. 그날 이후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2008년 입단 당시 임창용의 보장 연봉은 30만 달러였다. 최근 임창용이 160만 달러에 계약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실제 연봉은 200만 달러 이상이다. 그는 야쿠르트의 다년 계약 제의를 거부하고 1년 계약을 했다.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임=30만 달러만 받은 게 다행이었다. 연봉이 낮으니까 동료들이 나를 전혀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편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1년 뒤는 그때 가서 판단할 것이다. 몸이 좋고 구위가 괜찮다면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수도 있다.
▽이=원래 지난 시즌 목표가 선발이었는데 중간도 나쁘지 않았다. 올해 기회가 돼 선발로 나가게 되면 잘 던질 자신이 있지만 중간에서라도 내 임무를 다할 생각이다.
올해부턴 김태균(롯데)과 이범호(소프트뱅크)가 일본 무대에서 뛰게 된다. 이들의 일본 진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임=한국 선수들과 상대하는 건 아주 부담스럽다. 다 같은 한국 선수들인데 누군 이기고 누군 지고 하는 게 정말 싫다. 지난해 이승엽(요미우리)과 딱 한 번 맞붙었다. 결과는 초구 범타였다. 이긴 것보다는 공을 한 개만 던져 다행이다 싶었다. 올해 태균이, 범호와도 가능하면 상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난 걔들에겐 할 말이 없다. 한국에 있을 때 내 공을 워낙 잘 쳤던 선수들이다(웃음). 팀은 다르지만 잘했으면 좋겠다. 그 친구들이 잘해줘야 한국 야구의 가치가 올라간다.
▽임=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자기의 생각과 실력을 믿어야 한다.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시즌을 치르면 충분히 성공할 거라고 본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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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이헌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