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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은 꼭 예쁘고 고와야 할까”

입력 | 2010-01-13 03:00:00

■ 김면 교수 가족 ‘워홀 나들이’
수프 깡통이나 콜라병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나요?
괴짜 워홀 영감은 그런 고정관념을 깨뜨렸지




 “앤디 워홀이 만났던 옛날 여배우들이 요즘 배우들보다 훨씬 예쁜 것 같아요!” “실크스크린으로 뚜렷한 특징만 남겼지? 그래서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거란다.” 10일 오후 서울시립미술관 앤디 워홀 특별전을 찾은 김면 성균관대 교수, 아들 세화 군, 부인 홍혜정 씨(왼쪽부터)가 ‘제인 폰다’(1982)를 감상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찌그러진 앰뷸런스 차창으로 튕겨 나온 처참한 몰골의 시신. 1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 3층 전시실에 들어선 김세화 군(14·서울 반포중 1학년)은 3×2m 크기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라 “저게 뭐야!”라며 고개를 돌렸다.

뒤따라오던 아버지 김면 성균관대 예술학부 교수(54·디자인)는 실크스크린 작품 ‘앰뷸런스 사고’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으로 세화 군을 데려갔다.

“괴짜 앤디 워홀 영감이 너를 놀라게 만들었구나. 숨 한번 고르고 다시 돌아보렴. 저걸 보고 왜 기분이 안 좋았니?”

“보기 흉하잖아요.”

“그럼 미술관에 전시하는 작품은 꼭 예쁘고 고운 것들이어야 할까?”

“음…. 그건….”

“그래, 세화야. 지금 네가 맞닥뜨린 질문에 대해서 “꼭 그럴 필요는 없다”라고 대답한 사람이 바로 워홀이란다. 특별한 대답을 특별한 방법으로 관철해서 이름을 남긴 예술가지.”

1984년 서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김 교수는 워홀의 작품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 ‘창의적인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의 실제 사례로 들기에 워홀만큼 흥미로운 인물이 또 없었던 것. 아내 홍혜정 씨(49), 아들 세화 군과 함께 ‘시대를 초월한 팝 아트의 제왕,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 특별전을 찾은 김 교수는 미국과 유럽에서 조금씩 찾아 봤던 워홀의 주요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 규모에 감탄했다.

“캠벨 수프 깡통, 코카콜라, 두개골, 자화상들…. 대표작이라 할 만한 것들은 빠짐없이 모았구나. 세화는 참 운이 좋구나….”

“그런데 아빠. 수프 깡통이나 코카콜라병을 그린 게 어떻게 예술품이 돼요?”

“세화는 예술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니?”

“흔한 것들이잖아요.”

“잘 봤다.(웃음) 아빠가 워홀보고 아까 ‘괴짜 영감’이라고 했지? 이 사람은 남들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걸 싫어했어. 그래서 다른 예술가들이 ‘특별한 것’을 찾아 헤매던 시절에 ‘대중이 좋아하는’ 콜라병과 수프 깡통을 모델로 삼은 거란다. 뒤통수를 친 거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앞서 걷던 세화는 메릴린 먼로의 초상 연작(1967년) 앞에서 발을 멈췄다. 빨강 파랑 노랑 색깔로 물든 오묘한 표정의 먼로가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설레게 한 듯했다.

“같은 얼굴인데…. 왜 각각 다른 색으로 그린 거죠?”

“내가 다시 물어 볼게. 세화는 예술품을 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예술품은 유일해서 가치 있는 거잖아요.”

“워홀은 그런 고정관념에도 반기를 들었단다. 이 세 작품은 ‘실크스크린’이라는 기법을 쓴 건데, 같은 틀에 다른 색을 써서 인쇄하듯 찍어낸 거야. 어떤 생각을 어떻게 표현할지 정해지면, 그걸 누가 몇 장 찍어내든 문제가 아니라는 거였지. 그래서 작업실 이름도 ‘공장’이라고 했고.”

알쏭달쏭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커튼이 드리워진 ‘최후의 만찬’(1986년) 전시실에 서 있던 세화 군이 문득 김 교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세 개의 예수님 얼굴이…. 아빠 말대로 한 틀에서 찍은 것 같은데 조금씩 달라 보이기도 해요. 내 옷도 공장에서 찍어낸 거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고, 그래서 하나하나가 특별한 것 아닌가…. 그렇죠?”(웃음)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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