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먼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다.
우리가 목전의 안일에 익숙해서 장래의 일을 숙고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논어’ ‘衛靈公(위령공)’에서 공자는 장래를 숙고하지 않으면 발밑에서 憂患(우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장래의 일만 생각하고 발밑의 작은 일을 소홀히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또한 禍亂(화란)을 초래할 것이다. 공자도 遠慮(원려)를 중시하라고 했지 가까운 근심거리인 近憂(근우)를 소홀히 하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이 章에 대해 王肅(왕숙)은, 군자는 환란을 미리 생각하여 豫防(예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蘇軾(소식)은 사람이 발로 밟아나갈 때 발 디디는 곳 이외의 땅은 모두 쓸모없는 땅이지만 그러한 땅도 결코 버릴 수가 없듯이 천리 밖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禍亂이 지금 앉은 자리 밑에서 일어난다고 풀이했다.
그런데 정약용은 遠慮만 숭상해서는 안 되며 군자가 힘써야 할 바는 가까운 데 있다고 했다. ‘주역’에 보면 “군자는 거실에서 말하되 말이 선하면 천리 밖에서 부응하고 말이 선하지 못하면 천리 밖으로 떠난다”고 했다. ‘서경’에서는 “가까움으로 먼 곳에 미친다”고 했다.
정약용보다 앞서 이익도 近憂를 중시해서 어떤 재상이 ‘일은 秋毫(추호)라도 소홀하게 다루면 반드시 폐단이 따른다’고 한 말을 높이 쳤다. 그러면서 벼슬아치가 종처럼 정치를 한다고 비판했다. 종들은 탁자를 높이 괴고 술잔에 술을 가득 따르며 그릇을 길에 방치해두고는 탁자가 쓰러지고 술잔이 넘치며 그릇이 발에 차여도 자기 것이 아니라고 아까워하지 않는데 벼슬아치가 정치하는 것이 꼭 그런 식이라는 말이다. 선불교는 照顧脚근(조고각근)하라고 가르친다. ‘너의 발밑을 보라’는 말로, 여기 지금의 삶을 중시하라는 뜻이다. 遠慮를 지니되 近憂도 소홀히 하지 않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