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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육정수]변호사들이 느끼는 법관

입력 | 2010-01-13 03:00:00


1600년대 후반부터 영국 법관들은 흰색 가발을 쓰고 재판을 했다. 법관과 법정의 권위를 위해서였다. 가발이 처음부터 영국 법관의 전용물은 아니었다. 1600년대 초반 프랑스 왕 루이 13세가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쓴 것이 유럽 전체에 유행하면서 영국 법정의 상징이 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법관들이 입는 법복은 근엄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불편도 따른다. 여름철 무더운 날에는 대야 물에 발을 담근 채 재판을 했다는 전직 법관들의 얘기도 있다.

▷영국 대법원은 2008년부터 형사재판을 제외한 모든 재판에서 가발 착용을 없애고 법복은 가벼운 가운 모양으로 바꿨다. 영국연방인 호주도 법관의 가발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가발 폐지에 앞장섰던 니컬러스 필립스 영국 대법원장은 2007년 방한 때 “법관의 복장이 재판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외형적인 권위 세우기가 퇴조하고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소속 변호사들의 법관평가 결과를 대법원에 전달할 계획이다. 소속 변호사 7000여 명 가운데 555명이 낸 평가자료를 종합한 것이다. 참여율이 약 8%에 불과하지만 ‘우수 법관’ 20명을 포함해 평가가 낮은 법관의 이름까지 대법원에 제출될 경우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낮은 평가를 받은 법관은 고압적인 언행을 보였거나 편파적 재판진행, 합의 또는 자백 강요 같은 문제점이 있는 경우라고 한다. 우수 법관 명단만 공개해도 법관들의 심사가 편하지 않을 것 같다.

▷재판 당사자들은 법관의 말 한마디와 표정을 놓치지 않는다. 법관이 어느 한쪽을 두둔하거나 핀잔을 줄 경우 재판 결과에 공정성 시비를 부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패소한 당사자는 재판에 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변호사의 법관 평가도 공정성을 의심받을 여지가 많다. 재판에서 진 절반의 변호사들은 법관에 대해 불만을 갖기 쉽기 때문이다. 변호사의 주관적 느낌을 바탕으로 한 평가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법관의 고압적인 태도는 고쳐야 하겠지만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생겨서도 곤란하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