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만나면 아름다운 선율 절로 떠올라”좌충우돌 여행, 만화 그리며 치열한 20대 보내한국적 情恨보다 관객과 소통하는 무대가 꿈
차승민 씨는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노래를 쓰고 싶고, 관객과 같은 눈높이의 무대를 많이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김미옥 기자
2009년 8월 21일 서울 종로구 북촌창우극장에서 열린 ‘2009 천차만별 콘서트’ 첫날 공연. 가야금과 기타, 노래가 어울리는 ‘프로젝트 시로(詩路)’의 무대였다. 얼핏 뉴웨이브풍으로 적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듯싶더니 곧 아득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가락이 객석을 차분히 감싸 안았다. 사람들의 눈길은 대금을 부는 리더에게 쏠렸다. “몇 년 전 TV에서 봤는데”라는 속삭임도 들렸다.
“4년간의 공백이었죠. 지난해 문득 ‘내가 20년 동안 해온 게 국악인데’라는 그리움 같은 게 밀려들더군요. 대학 때부터 작곡했던 네 곡을 들고 천차만별 콘서트에 무작정 신청했습니다. 며칠 뒤 ‘개막 공연을 하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대금연주자 겸 작곡가 차승민 씨(30). 그는 치열한 20대를 보냈다. 서울대 국악과 2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후 친구 둘을 ‘꾀어’ 6개월 동안 남아시아와 유럽 20여 개국을 여행하며 길거리 공연을 했다. 오늘날 국악 가수로 활동하는 이안도 셋 중 하나였다. 세 사람의 좌충우돌 여행기는 ‘아주 특별한 소리여행’이라는 4부작 다큐멘터리로 2003년 TV에 방영됐다.
“나름 열심히 준비했는데, 무대공포증 때문에 한순간에 무너졌어요. 자존심이 상했죠. 아, 나는 체질이 아니구나….”
결혼하고, 아이 둘을 손이 덜 갈 정도로 키워놓았더니 그토록 자신을 괴롭힌 국악이 다시 마음속에 찾아왔다. 천차만별 콘서트 측에서 선뜻 ‘참가하라’는 연락을 받은 뒤 모교인 서울대 국악과 조교에게 ‘똘끼’ 있는 후배들 좀 찾아 달라고 부탁해 7명으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시로’를 만들었다. “왜 똘끼냐고요? 실력은 다들 비슷해요.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었죠.” 천차만별 콘서트 개막공연에 이어 ‘2009 21세기 한국음악 프로젝트’에서 월드뮤직상을 수상했다. 외국 청중의 마음에도 가 닿을 접점이 많음을 인정받은 것. 여행과 예술을 접목하는 TV 프로그램에도 잇따라 출연했다. 그 덕분에 요즘 알아보는 사람이 제법 많아졌다며 그는 웃음을 지었다.
그와 음악이 만나는 사이에는 언제나 ‘시’가 있다. 새 곡을 만들기 위해 늘 시집을 들여다본다고 했다. “운율이 있고 심상(心想)이 확 드러나는 시를 만나면 선율이 떠오르죠. 하이네나 정지용, 김소월의 시 중에 간결하면서도 짙은 심상이 들어있는 시를 많이 만나게 됩니다.”
국악의 세계로 돌아오면서 그가 다짐한 일 중 하나는 이른바 ‘한국적 정한’이라고 알려진, 애조가 드러나는 국악은 만들지 않겠다는 것. 그래서 창작가들이 즐겨 쓰는 국악 조성은 피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첫 몇 소절 동안은 ‘국악에 바탕을 두었구나’라고 이내 알아차리기 힘든 노래도 많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