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이세신 PD의 반상일기]韓中日 프로상대 승률 60% 기염… 아마고수들 입단 여전히 좁은 門

입력 | 2010-01-14 03:00:00


아마추어가 프로기사와 맞바둑을 둬서 이긴다?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 제2회 비씨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 프로-아마 통합예선에선 당연한 일이 되고 있다.

이번 통합예선엔 20명의 아마추어가 출전했다. 1회전에선 부전승을 거둔 6명을 제외하고 14명이 대국을 펼쳐 9명이, 2회전에선 15명 중 9명이 이겼다. 최종 3회전에선 5명이 이겨 본선에 진출했다. 한국 중국 일본의 프로기사를 상대로 60%의 승률을 올린 것이다.

통합예선에서 단연 돋보였던 아마추어 기사는 나현 군(15)이었다. 한국기원 연구생 1조 1위인 그는 2회전에서 국내기전 결승전을 여섯 차례나 치른 강호 이영구 7단을 물리친 데 이어 3회전에서 중국의 위빈 9단마저 반집으로 눌러 본선의 관문을 뚫었다. 나 군을 문하에 두고 있는 양재호 9단은 “평소 프로기사와의 연습바둑에서도 밀리지 않는 ‘입단 0순위’의 실력자”라고 밝혔다. 신예 강자인 강유택 4단과 진시영 3단도 아마기사에 무릎을 꿇은 것을 보면 실력은 이미 현역 프로기사 못지않다.

하지만 이 같은 젊은 기재들이 입단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등용문은 너무나 좁고도 높다. 전주에서 ‘제2의 이창호가 났다’며 떠들썩할 정도로 천재 소리를 들었던 나 군만 해도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바둑 유학을 와서 도장에서 기숙하며 지낸 지가 벌써 6년째다. 너무 오래 고여 있다 보면 굳어버리는 것처럼 이들의 바둑도 싹을 틔우기 전에 시들어버리지 않을까. 입단 시험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으면 스스로 경직되고 틀에 얽매이게 마련이다. 하나의 목표점을 향해 옆도 보지 않고 달려가야 하기에 연구생은 ‘갇힌’ 존재가 되기 쉽다. 드넓은 프로 세계에서 실력자들과 어깨를 부딪치고 깨지면서 제 높이를 생생하게 깨달을 수 있는 기회는 이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보약이다. 나 군도 본선 진출 후 인터뷰에서 “이세돌 쿵제 9단같이 센 사람과 두고 싶다”고 말했다. 성적에 연연하기보다는 최고수와 대국하는 경험을 쌓고 싶다는 뜻이다.

한국기원은 지난해부터 일반인의 프로 입단 문호를 확대하기 위해 아마추어 출전이 허용된 세계대회에서 일정한 성적을 올릴 경우 ‘입단 점수’를 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세계대회 64강에 오르면 1점, 32강은 2점, 16강은 3점을 주고 누적해서 5점을 얻거나 8강에 진출하면 특별 입단을 허용한다. 하지만 점수가 너무 ‘짜다’는 평이 많다. 이 점수제로 입단자가 과연 한 해에 한 명이라도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기원은 국내기전인 명인전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점수를 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지만 미흡하긴 마찬가지다.

입단 당시엔 실력이 조금 부족해도 나이 어린 기사를 조기에 발굴해 프로 무대에서 뛰도록 해야 한다. 점수제의 근본 취지를 살려 현실성을 가미해야 할 시점이다. 세계대회 16강(누적 3점)이면 입단을 허락하거나 주요 국내 기전에서도 점수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새해에는 입단의 길이 넓어지길 기대한다.

이세신 바둑TV 편성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