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숲에 새 생명을… 인도네시아에 ‘녹색비전’ 심는다불법벌채 - 산불로 황폐화건기땐 풀 한포기 못자라한국, 50만ha 복원 지원탄소배출권도 확보하기로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열대의 토종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숲이었다. 누사틍가라 주정부의 국제협력과장 에코 씨는 “1980년대 후반부터 인구가 늘면서 주민들이 마구잡이로 나무를 베어내기 시작했고 그 결과 숲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 땅은 국유림이지만 대대로 이곳에 살아온 주민들은 살 집을 짓기 위해, 그리고 먹을 것을 경작하기 위해 벌채를 했다. 기자와 함께 현장을 방문한 고려대 손요환 교수는 “완전 황폐지는 아니지만 숲은 거의 파괴된 상태”라고 말했다.
불법 벌채와 화전 개발, 산불 등으로 황폐화된 인도네시아의 산림은 이미 2006년에 한국 전체 산림 면적의 9배에 이르는 5900만 ha(5900억 m²)에 이르렀고 최근에도 해마다 300만 ha(300억 m²)가 황폐화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네시아는 일찍부터 황폐화된 지역에 나무를 심고 싶었지만 재정적 여유가 없었다. 그런 이웃에게 한국이 손을 내밀었고 두 나라는 2006년 8월 조림사업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인도네시아는 국토 전역에서 50만 ha(50억 m²)를 조림지로 내놓고 한국 정부와 민간 등이 조림사업에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양국은 2007년 7월 조림사업으로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에 공동 참여키로 했다. 한국이 500만 달러를 무상원조해 국제기후변화협약(UNFCCC)이 규정한 ‘신규 조림 및 재조림 청정개발(AR CDM)’ 사업과 숲 전용(轉用) 방지를 통한 보존(REDD) 사업을 시작했다. 특히 양국은 ‘AR CDM’ 사업을 통해 유엔이 정한 기준에 맞는 조림지를 만들어 이산화탄소 배출권도 확보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3일 시범 조림 대상지로 이곳 롬복 섬 동남부 300ha(300만 m²)가 결정된 것은 이런 노력의 첫 결실이다.
탄소배출권 확보용 해외조림지 첫 선정
유엔이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인정하는 ‘AR CDM’ 사업은 입지 선정 자체부터가 어렵다. 고려대 손 교수와 이우균 교수가 이날 롬복 섬을 방문한 것은 이번 프로젝트 팀이 사업 대상지를 결정한 과정을 연구한 뒤 한국에서 첫 ‘AR CDM’ 사업 대상지를 선정하는 데 참고하기 위해서다. 고려대 박사과정 이수경 씨는 “직접 현장을 찾아보니 용지 선정 과정에서 현지 주민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KOICA는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일반 조림 및 육묘 사업도 벌여왔다. 2005∼2007년에는 180만 달러를 들여 수도 자카르타 인근 룸핀 지역에 ‘열대림 임목 종자 관리 및 개발사업’을 진행했다. 30ha(30만 m²) 규모의 양묘장을 지어 우수 열대수종의 묘목을 키우는 일이다.
7일 방문한 사업장 곳곳에서는 현지인 근로자 수십 명이 부지런히 묘목을 손질하고 있었다. 홍창원 프로젝트매니저는 “이곳에서 재배한 묘목들은 4곳의 시험림에 이식해 일정한 크기로 키운 뒤 인도네시아의 황폐 지역을 숲으로 바꾸는 데 쓰인다”고 설명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인도네시아 정부가 조림사업을 벌이기로 합의한 인도네시아 서부 누사삮가라 주 롬복 섬 남동부 일대는 현재 숲이 파괴된 황무지에 가깝다(위). 그러나 앞으로 조림사업이 시작돼 시간이 흐르면 아래 사진처럼 울창한 열대림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래 사진의 숲은 한국계 기업 코린도가 칼리만탄 주에 조성했다. 사진 제공 코린도
롬복·룸핀(인도네시아)=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한국기업들 상업용 조림 통해 ‘상생투자’
코린도-SK네트웍스 등 진출▼
인도네시아에 나무를 심는 한국 기관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뿐만이 아니다. 2006년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조림사업 양해각서 체결을 전후해 준(準)정부기관과 민간기업들이 다양한 형태의 상업용 조림사업을 하고 있다.
산림조합중앙회는 인도네시아영림공사와 함께 자바 주 1만 ha(1억 m²)에 나무를 심고 있다. 양측은 지난해 3월 본계약을 체결하고 4월에 첫 식수를 한 이래 지난해 말까지 843ha(843만 m²)에 나무를 심었다. 현지 법인의 성인경 대표는 “민디와 생온 등 질 좋은 원목을 생산해 부족한 국내 목재 수요를 충족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림조합중앙회는 인도네시아임업공사와 함께 남부 칼리만탄 주 3만2000ha(3억2000만 m²)에 나무를 심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계 현지기업인 코린도는 양국의 양해각서가 체결되기 전인 1997년부터 칼리만탄 주 중남부에 서울시 넓이와 비슷한 6만3013ha(6억3013만 m²)를 조림해 1억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코린도는 지난해 인도네시아 전체 합판 생산량의 30%, 종이 생산량의 68%를 각각 생산해 세계로 수출하는 현지 최대 임업회사다.
이 회사의 김훈 이사는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녹색성장과 자원확보라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며 “조림사업 등을 통해 우리 정부와 민간이 함께 시너지 효과를 이룰 수 있도록 시급히 이곳에 국가적 전략거점을 만들어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 숲 복원 기술에 큰 기대… 녹화경험 배우고 싶다”
■ 印尼산림연구청장▼
―사라져가는 숲을 복원하고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불법 남벌과 화전, 무분별한 개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행정력을 동원하고 있다. 또 대대적으로 나무 심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연간 전체 인구 1인당 4, 5그루씩 모두 10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 총 15만 ha(15억 m²)를 조림하겠다는 국가적인 목표를 세웠다.”
―국제협력도 강화하고 있는데 성과가 어떤가.
“한국을 비롯해 호주, 독일, 일본 등과 함께 자바 주와 칼리만탄 주에서 숲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함께 펴고 있다. 특히 한국과의 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확보하기 위한 한국과의 시범 조림사업 대상지로 롬복 섬을 결정했다. 어떤 의미가 있나.
“다른 나라들은 1개 지역별로 사업을 하는데 이번 사업은 시범 조림사업에 이어 롬복 섬 전체로 그 대상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열대우림지역이 아닌 건조지역에 나무를 심는 것이고, 원래 숲이었다가 황폐해진 지역을 다시 숲으로 복원하는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다.”
―앞으로 한국과 어떤 협력관계를 원하나.
“양국 간 협력 과정에서 구체적인 실행과 상호 혜택의 원칙을 지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인도네시아 젊은이가 한국에 가서 한국인들이 숲을 만들고 가꾸어온 경험과 시스템을 배울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