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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인병택]우리가 아이티를 도와야 하는 3가지 이유

입력 | 2010-01-15 17:03:03


개인적으로 아이티 대지진 참사를 보는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2006년 3월부터 2008년 5월까지 도미니카공화국에 상주하면서 아이티대사를 겸임했던 필자는 여러차례 아이티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자주 드나들던 대통령궁이나 호텔, 그리고 가옥들이 참혹하게 무너진 모습은 충격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아이티를 방문할 때마다 한국전쟁 직후인 50년대, 60년대의 모습과 어쩌면 이토록 똑같을까 하는 동병상련의 안타까움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아이티가 이러한 척박한 현실을 과연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 항상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지진이 나기 전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인 아이티가 이번 참사를 제대로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아이티는 우리와 지리적으로 먼 카리브 해에 위치해 있지만, 알고 보면 우리에게는 매우 가까운 나라다. 우리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외교와 민간차원에서 아이티를 도와야 할 충분할 이유가 있다.

먼저 아이티는 1962년 우리와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우리를 변함없이 지지해온 전통 우방국이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아이티는 국제무대에서 우리의 크고 작은 유치교섭에 반대한 적이 한번도 없다.

특히 아이티는 2012 여수세계엑스포 유치전에서 우리가 모로코, 폴란드와 치열한 3파전을 벌일 때 진작부터 우리의 듬직한 우군이 되어주었다. 아이티는 흑인국가지만, 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지지하여 모로코가 아프리카 국가들을 앞세워 세를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특히, 모로코가 유럽의 인접국가들을 통해 모로코 지지교섭을 간접적으로 하게 하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를 지지해 준 의리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사실이지만, 아이티 정부는 한국전쟁 당시에 외교관계 조차 없었던 우리나라에 비록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현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최근 아이티 정부와 민간사회는 우리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사실에 크게 주목하고, '한국 따라하기'에 많은 관심을 보여 왔다.

둘째, 아이티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민주주의 이념이 전 세계적으로 정착될 수 있느냐를 판가름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기 때문에 우리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아이티를 도와야 할 당위성이 있다.

아이티는 1492년 콜럼버스의 제 1차 항해 당시 발견돼 16¤18세기에는 프랑스령, 20세기 초에는 미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이후 종신 독재, 군부 쿠데타 등 정치, 외교적 부침으로 인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크게 확산되었다. 최근에는 식량 부족으로 진흙으로 빚은 쿠키를 먹는 모습이 국제사회에 알려져 상상할 수 없는 가난의 깊은 골을 보여주었다.

아이티는 인권과 민주주의 측면에서 매우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아이티는 세계역사상 유일하게 노예혁명을 통해 건국한 최초의 흑인공화국이다. 아이티는 프랑스, 스페인, 영국 군대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미주대륙에서 미국 다음으로 독립한 국가다. 아이티의 혁명은 이후 중남미에서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노예해방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노예혁명의 성공으로 인한 아이티의 영광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끊임없는 쿠데타와 내란, 세습독재, 정치지도자 망명, 암살, 학살, 길거리 처형 등 정치적 혼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195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뒤발리에 부자가 종신대통령을 자임하면서 아이티에서 자행한 인권탄압적 공포정치에 대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와 국제사회는 아이티를 적극 도와 과거의 역사적 비극이 재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유엔이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을 아이티특사로 임명하고, 아이티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아이티의 인권을 신장하고,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아이티에서 인권과 민주주의가 정착된다면 그야말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전 세계에 제대로 정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아이티 구호활동은 우리 대외원조사업의 중대한 시금석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국제적 위상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우리 정부가 신속하게 100만 달러를 지원하고 긴급구조팀을 파견키로 한 것은 평가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대지진이 아이티의 국가 존립기반 자체를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중미·카리브 지역 전체의 정세를 매우 불안정하게 가져가는 중대 사건임에 비추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지원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제 1회성 구호활동이나 지원사업이 아닌 중장기적으로 아이티 재건프로젝트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를테면 100만 달러 지원에 이어 주요 중남미국가들처럼 1000만 달러 정도를 추가 지원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폐허가 된 아이티의 도로와 교통시설을 실질적으로 복구하는 무상원조사업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한국-아이티 우정의 도로'를 만들어 기증한다면 항구적인 양국관계 발전을 위해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한국전쟁이라는 국난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바탕으로 극복한 특수한 경험이 있다. 아무리 냉엄한 국제관계 속에 살고 있더라도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평범한 격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이티는 바로 지금 친구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아이티가 처한 미증유의 어려움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우리의 국제적 위상도 저절로 높아질 것이다.

여수세계엑스포가 열리는 2012년은 양국 외교관계가 수립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아이티가 하루빨리 재건되어 한·아이티 양국 정부와 국민이 뜻 깊은 50주년을 맞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인병택(해밀을 찾는 소망 정책실장·전 주도미니카대사, 아이티 겸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