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하다! 무슨 술법인가”… 서양 新문명에 ‘찰칵’ 눈 뜨다

1863년 중국 베이징 러시아공사관에서 러시아 사진가가 이항억 등 조선 연행사 일행을 촬영한 사진. 한국인을 모델로 한 최초의 사진이다. 낯선 사진과의 첫 만남이었지만 이들 연행사 일행의 포즈는 자연스럽고 세련됐다. 이 사진은 영국으로 갔다가 2008년에야 우리에게 알려졌다. 사진 제공 박주석 명지대 교수

사진에 찍히다 - 1863년 조선사절단, 베이징 러공사관서 첫 경험
다음 날인 1863년 1월 29일, 이항억을 필두로 16명이 갓 쓰고 도포 입은 모습으로 숙소인 사역회동관(四譯會同館)을 나서 근처의 아라사관으로 향했다. 그곳에 들어서자 일행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이항억이 먼저 의자에 앉았다. 무슨 기계가 한 대 놓여 있고 러시아 사람이 천을 뒤집어쓴 채 뭐라고 외쳤다. 역관들이 있었으나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찰칵, 기계음이 들렸다.

그러나 1862∼1863년 연행사 일행의 경험은 이전보다 더 독특했다. 이들이 한양의 서대문 모화관을 출발한 것은 1862년 10월 21일. 두 달 동안의 여정 끝에 베이징에 도착한 이들은 아라사관에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 러시아인에게 의뢰해 사진을 찍은 것이다. 한국인과 사진의 첫 만남. 1840년 사진이 등장한 지 23년 만의 일이다.
2개월 험난한 노정 - 한양서 3200리 길… 수양산 들러 백이숙제 참배도
백이숙제 고사의 배경인 중국 허베이 성 수양산 길. 지금은 채석장으로 변했다. 광석을 고르는 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쉬고 있다. 사진 제공 최인진 사진역사연구소장
이항억 일행은 산하이 관 바로 못 미쳐 팔리보(八里堡)에서 생일잔치를 하기도 했다. 산하이관을 넘어 백이숙제(伯夷叔齊) 유적이 있는 허베이(河北) 성의 수양산도 지났다. 절개를 지키기 위해 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고 살다가 굶어 죽었다는 백이와 숙제의 고사가 있는 곳이다.
한양에서 의주까지 1186리, 의주에서 선양까지 574리, 선양에서 산하이 관까지 792리, 산하이관에서 베이징까지 670리. 그 멀고 험한 여정 끝에 연행사 일행은 사역회동관에 짐을 풀었다.
회동관이 있던 곳은 현재 베이징 중심부인 첸먼(前門) 둥다제(東大街) 23호. 톈안먼(天安門) 광장 동남쪽 끝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회동관은 1903년 헐렸고 그 자리에 미국공사관이 들어섰다. 지금은 레스토랑과 식당 미술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공사관 때의 옛 모습을 간직한 건물도 있고 최근 다시 들어선 유리벽 건물도 있다.
옛 모습의 건물은 프랑스 레스토랑으로 쓰이고 있었다. 이곳 후문은 과거 각국 대사관이 밀집해 있던 둥자오민항(東交民巷)과 붙어 있다. 둥자오민항 골목길을 따라 동쪽으로 2, 3분 걸어가면 중국 최고인민법원이 나온다. 아라사관, 러시아공사관이 있던 자리다. 고단한 연행 노정 끝에 1863년 이항억 일행이 사진을 촬영하고 한국 사진의 역사가 시작된 곳. 그러나 이를 알려주는 흔적은 없었고 육중한 건물과 높은 담장, 출입을 통제하는 경비병만 눈에 들어왔다.
자연스러운 포즈 - 한국 사진의 뿌리… 영국으로 흘러갔다 2008년 공개
1863년 2월 3일 이항억 일행은 다시 아라사관을 찾았다. 자신의 모습이 나온 사진을 보기 위해서였다.
현재 남아 있는 사진은 6장. 개인 사진도 있고 단체 사진도 있다. 관복을 입고 의자에 앉은 사람은 이항억으로 추정된다. 연행사 일행은 그해 4월 한양으로 돌아왔으나 이 사진은 가져오지 못했다. 러시아 사진가가 그대로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당시 베이징에서 의료 선교활동을 했던 한 영국인이 이를 수집해 영국으로 가져갔다. 그는 1892년 이 사진들을 런던선교회에 기증했고 현재 런던대 동양 및 아프리카 연구학교(SOAS)가 위탁 보관 중이다. 2008년 박주석 명지대 교수를 통해 사진 6점이 모두 공개됐다.
연행사 사진의 흥미로운 점은 모델의 포즈가 매우 자연스럽고 세련됐다는 사실이다. 요즘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긴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150여 년 전 이국땅에서, 그것도 처음 만난 카메라 앞에서의 포즈로서는 놀라울 정도다. 그런 포즈를 이끌어낸 러시아 사진가의 촬영 기술이 탁월했던 것일까. 연행사 일행이 이미 사진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한 최 소장의 설명.
“베이징까지 가는 여정 도중 이들이 사진에 관한 정보나 지식을 접한 흔적이 있는지 모두 추적해 봤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찾지 못했습니다. 이항억 일행의 놀랄 만큼 자연스러운 포즈는 한국 사진사 연구에서 하나의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 사진의 뿌리, 그 역사를 찾아가는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