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서울 강남 고액과외 수사중 첩보 입수 적발감시소홀한 태국 원정… 현지인 ‘시험지 유출’ 매수강사가 答 달아 美유학 2명에게 보내… 대학 입학
《소문으로만 떠돌던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부정행위가 경찰에 실제로 적발돼 큰 파장이 예상된다. 시차를 이용한 교묘한 부정 수법이 드러남으로써 미국 교육평가원(ETS)의 진상 조사와 대책 마련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 시차 이용 수법 실제로 밝혀져
태국과 미국 코네티컷 주 사이에는 12시간 시차가 있다. 오전부터 3시간 45분 동안 ‘SAT Ⅰ’ 시험을 치르고 나온 태국의 응시생에게서 문제지를 받아 답안지를 작성한 뒤 미국에서 시험을 치를 응시자에게 전달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다.
서울 수서경찰서에 따르면 강남 E어학원 강사 김모 씨(37)는 지난해 1월 24일 태국 현지에서 불과 1만5000원 정도의 대가를 지불하고 SAT 응시자를 매수했다. SAT 시험은 원칙적으로 시험지의 외부 유출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리감독이 허술한 태국에서는 응시자가 시험지를 몰래 들고 나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 김 씨는 현지에서 빼돌린 시험지를 갖고 답안지를 작성해 코네티컷 주에서 SAT 시험을 치르는 김모 군(19) 등 2명에게 e메일로 전송했다. 경찰은 김 씨가 태국 여행이 잦았던 점으로 보아 사전에 시험 문제를 빼돌리기 위해 현지 응시자를 미리 매수해 두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김 씨의 e메일 계정과 학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태국에서 빼돌린 SAT 시험지와 e메일 전송 기록 등을 확보했다. 경찰은 또 외부 유출이 금지된 SAT 시험의 기출문제를 모은 파일도 함께 발견했다. SAT 시험은 문제은행식으로 출제되기 때문에 기출문제 중에서도 다시 시험 문제가 나올 수 있다.
외국어학원 ‘SAT 설명회’ 북적 한 외국어학원에서 개최한 미국 명문대 진학입시 설명회. 설명회에 참석한 한 학부모가 입구에서 SAT 관련 자료를 받아들고 있다. 미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인 SAT는 미국 대학들이 입학전형 때 주요 전형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국의 유명 사립대인 B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알려진 김 씨는 SAT를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족집게 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한 회에 280만∼300만 원, 평균 12회에 3000만 원 이상의 고액 수업료를 받았는데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지 못할까 봐 부담스러웠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한 차례 김 군 등 수강생 2명에게만 문제지를 유출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군 외에 같은 학원에 다니는 학생 20여 명이 같은 날 함께 시험을 치른 것으로 알려져 경찰은 김 군 등이 다른 학생들에게 문제와 답안을 전달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부정행위로 얻은 SAT 성적으로 미국 대학에 진학해 재학 중인 김 군 등이 미국에 있어 아직 조사를 하지 못한 상태다. 경찰은 학생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다. 경찰은 “김 씨가 부정행위에 대한 대가로 별도의 금품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집중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 대치동 학원가 “드디어 터졌다”
SAT 대비 학원이 밀집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과 역삼동 일대에서는 그동안 시차를 이용해 SAT 시험에 부정행위를 한다는 소문이 공공연한 비밀로 나돌았다. 태국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시험문제를 빼돌린 다음 이를 미국에 있는 응시자들에게 e메일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대치동의 한 SAT 대비학원 강사 K 씨는 “이런 소문이 나돈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며 “학원 강사들이 직접 문제를 풀어보고 나와서 지문의 내용이나 어려운 단어를 정리해 외국에 있는 수강생들에게 e메일로 보내준다는 소문이 있다”고 전했다. K 씨는 “강사가 시험을 보려 부산에서 직접 올라오기도 하고 심한 경우는 시험지 몇 장을 몰래 찢어서 가지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한편 학원가에서는 일부 학원들이 부정행위에 연루된 것은 SAT 학원 간의 과당경쟁과 치솟는 수업료가 배경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