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예술적 영화 ‘박쥐’. “누가 이딴 거 보러 오자고 했어? 당신이지?” 하고 옆에 앉은 아내에게 큰 소리로 쏘아붙이며 다른 관객들의 관람을 방해하는 ‘꼴불견’ 관객이 있다. 이런 얘기를 듣는 순간 옆자리 관객은 이 영화에 감동받고 있는 자신에 대해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기침족… 러브호텔족… 실황중계족…
① 귀신 족(族)= 극장 내에서 시종 기침을 해대는 자들이다. 신종 플루에 대한 공포가 확산된 요즘 이런 자들의 위력은 빛을 발한다. 이들은 "콜록콜록"의 수준을 넘어, 누렁이들이 짓는 소리인 "컹컹"에 가까운 기침을 내뱉다가 급기야는 "캑캑"거리면서 숨이 넘어갈 듯한 마무리로 사방팔방의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안긴다. 이들은 △마스크를 절대로 쓰지 않고 기침이 나와도 손으로 가리지 않으며 △가급적 인플루엔자의 확산이 용이한 정중앙 좌석을 고집한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절대로 이런 자들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봐서는 안 된다. 그들은 미안해하기는커녕 당신의 시선에서 야릇한 희열을 느끼며 피를 토할 듯한 새로운 종류의 기침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겁나지? 너희 다 죽었어!'라고 작심한 듯한 '나 죽고 너 죽자'식 운명공동체의식을 지닌 자들. 특히 미친 듯이 기침을 해대는 초딩(초등학생) 자녀를 자랑스럽게 데리고 와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는 학부모들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자녀가 기침을 할 때마다 외려 얼음이 든 콜라 사이다 등 냉 음료를 아이에게 들이댄다. '그래 내 자식 잘 한다. 너만 재수 없이 감기 걸리면 되겠니? 다 옮겨버려!'라고 작심한 듯한 태도로 강력한 기침을 독려하는 것만 같다.
② 러브호텔 족='아예 모텔을 가지 왜 극장을 오셨어요?'라고 묻고 싶을 만큼 야한 행위를 서슴지 않는 청춘남녀는 관람의 가장 큰 방해물이다. 이런 남녀가 옆에 앉으면 불쾌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행위를 벌이는지 자꾸만 곁눈질해 살펴보게 만듦으로써 관람집중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친구를 '보호'해준답시고 자신의 외투를 벗어 여자친구의 다리 위로 덮어주는 행위는 위험한 조짐. 이때부터 외투는 '옷'이 아니라 모텔의 '이불'로 변신한다. 잠시 뒤 남자의 손은 외투 밑에서 열심히 꼼지락거리고 있게 마련. 이런 남녀는 무슨 이유에선지 10분에 한 번꼴로 자세를 극단적으로 바꾸는데, 이때마다 여자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면서 남자에게 "근데 아까 그 남자, 죽었어?"하고 꿈에서 막 깨어난 듯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이런 짓을 하는 커플 중 남자는 자신들이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영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표시를 하기 위해 액션장면이나 웃기는 장면에서 필요 이상으로 "와아!" "오우!" "으음!"같은 감탄사를 위장용으로 연발한다. 심지어 영화 보다가 여자친구에게 "오늘 머리 감았어?"하고 물어보는 남자도 있다.
④ 실황중계 족= 특히 여성 둘이 함께 온 경우에 많다. "어머, 어머, 쟤네들 드디어 만났어, 만났어!"하거나 "저거 봐봐. 결국 까불다가 죽을 줄 알았다"하면서 스크린에 나오는 남들도 다 보고 있는 장면을 고스란히 묘사하며 수다를 떠는 자들이다. 이상하게도 이런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는 소곤소곤 거리는데도 영화 대사보다 귀에 더 쏙쏙 들어와 관람을 방해한다. 특히 영화 '쌍화점'을 보면서 "어머, 어머, 웬일이야? 쟤네들 혀 넣었어, 혀 넣었어!"하면서 해파리냉채를 씹을 때 나는 "쩝쩝"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중년여성들도 있다. 이렇게 영화내용을 중계하는 자들보다 더 한 자가 있으니, 이름하여 '예언 족'들이다. 주로 여자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는 남자들인데, 특히 공포영화를 보면서 겁 많은(체하는) 여자친구의 눈을 가리며 "이 다음에 도끼가 확 날아와, 눈 감어!"하면서 다음 장면에 나올 얘기를 옆 사람에게 전부 까발려버린다. 심지어 영화 '아빠는 여자를 좋아해'가 시작되자마자 "저 여자, 사실은 옛날에 남자였다"고 하거나 미스터리스릴러 영화가 한참 진행되는 도중에 "쟤가 범인이야"하고 '재'를 뿌리는 자들도 있다. 이런 남자들은 다른 여자를 동시에 사귀고 있는 '양다리' 걸친 자들일 공산이 크다. 딴 여자와 이미 한 번 보고 이 여자와 한 번도 보고 있는 것이다. 또 영화에 대한 호오(好惡)는 관객의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도, 영화 초장부터 자신의 감상평을 큰소리로 말하기도 한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에서 송강호가 김옥빈의 발을 격렬히 핥는 순간, "이거 당신이 보러오자고 했지?"하며 큰 소리로 옆에 앉은 아내에게 면박을 주는 중년유부남이 바로 그런 경우.
※극장에서 햄버거는 물론 순대(내장 섞은)까지 먹으면서 냄새를 확산시키는 자들, 정체불명의 까만 비닐봉투에 방울토마토 100개를 싸와 1시간이 넘게 바스락바스락 봉투소리를 내면서 먹는 자들, 양팔과 다리를 좌우로 한껏 벌려 옆 사람을 압박하는 자들(다리를 쩍 벌리는 사람들이란 뜻에서 '쩍벌이'라 불린다), 싸구려 발목양말을 신은 발을 앞좌석 사이 팔걸이 위로 쓰윽 집어넣어 앞에 앉은 관객을 화들짝 놀라게 하는 자들, 앞좌석을 미친 듯이 발로 차는 자들, 상영 중 휴대전화하면서 "지금 영화 보고 있어. 응. 괜찮아!"하고 대놓고 말하는 자들, 상영 중간에 자리 찾아 들어오면서 미리 앉아있는 관객의 발등만 징검다리 밟듯 '귀신처럼' 밟고 들어가는 자들은 너무 많아서 별도의 유형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